세일즈맨의죽음 아서밀러 민음사 희곡
팔 수도, 다시는 살 수도 없는 것 하나가 남았을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에게 남는 선택지는
과연 무엇인지를 묻게 만든다.
두 아들을 둔 예순셋의 세일즈맨 윌리가 선택한 건
자신의 발이 되어 준 자동차와 함께
세상 밖으로 돌진한 것이었다.
장례식날 집의 할부금 불입이 완료되고
결국 뉴욕의 집 한채로 그의 삶이 지불되어 버린 셈이다.
더 비극적인 건 오늘 한국 사회에선
그나마 자력으로 집 한채 남기는 삶 조차도
모두에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뉴욕에 집 한채 장만한 로먼 부부는
그나마 깍아먹을 담보물이라도 남았으려니.
#로먼부부는젠트리피케이션의수혜자
1949년의 비관이 70년이 지난 미래에 더욱 심각해질 줄
사람들은 예상했을까.
어떻게 단 한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가 되어야 하는가.
외줄타기처럼...
아...
2008년엔 빌어먹을 금융기관까지 탐욕에 합승해서
집에 잡혀 먹히게까지 만들었더랬지.
이 연극이 더 이상 상연되지 않는 날이
이 작품의 의의가 아닐까 곱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