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벌 열린책들 도스토예프스키
원어의 의미를 따진다면 <죄와 벌>이라기 보다는
<범죄와 처벌>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다 형이상학적인 제목이 더 친근한 것은
이 작품이 작가의 목적 이상으로
독자에게 더 문학적인 문학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이 문학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계속해서 읽히기 때문일텐데,
과학이나 의학이나 어떤 현상이라는게
지금과 비교하면 티끌같다고도 할 만한
정확히 150년 전의 질문과 고뇌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p809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몸을 팔았지만 가장 고결한 소냐야말로 우월성에 천착해서 두 노인(악한 전당포 노파와 무해한 여동생 리자베따)을 도끼로 살해한 지식인 라스꼴리니꼬프의 구원이 되었다는 소설 말미의 이 지점이야말로 서열주의와 단죄로서의 정의구현, 모든 면에서 단편적인 한계를 보이는 체제 하에서 어떻게 인간성과 삶을 지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과 질문을 던져준 가장 큰 사건이었다.
라스꼴리니꼬프가 유형생활을 마치게 될 서른 둘, 그리고 도스또예프스키가 실제로 유형을 마친 서른 셋.
라자로(나자로)의 나흘과 라스꼴리니꼬프가 살인 후 병들어 있던 나흘 등 구미호같이 눈에 띄는 얘깃거리가 많이 있었지만 극적인 감흥을 느끼게 해줬던 809쪽의 한 문장이 '생은 읽거나 분석하기보다는 느낄만한 것'이라는 목소리로 들렸다.
그리고 나따위가 거론해봤자 소용은 없겠으나...
러시아 문학에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황폐한 20세기를 맞이하게 된 것인지...
중국도 저러지는 않았는데...
레닌과 스탈린은 역시나
러시아의 예술을 필두로 한
전 분야에 있어서 체르노빌같은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