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교수 강연회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강연회가 광화문 교보생명 건물에서 열렸다.
교보문고에서 그의 신작 「에로스의 종말」 출간을 기념해 350명을 대상으로 기획한 행사다.
요즘 들어 사람들 사이에서 흔하게 말하는 '소진 증후군', '번아웃 증후군'은 2012년 「피로사회」 이후 확산된 단어다. 긍정에 익숙해진 사람들, 긍정만이 옳다는 세상에서 '포르노'가 아닌 '에로스'를 말하는 한병철의 글에 세상은 다시 귀를 귀울여줄까?
<강연장에 한병철 교수가 들고 온 강연록 그 자체가 보고 싶은 분은 기사 링크>
책에서 여러 번 등장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멜랑콜리아」
그리고 「멜랑콜리아」에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음악.
행성 멜랑콜리아가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저스틴은 우울증으로 결혼식을 망치고야 만다.
우울증으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저스틴(커스틴 던스트)과 동생을 간호하는 언니 클레어(샤를로뜨 갱스부르).
그러던 저스틴이 거대 행성이 지구에 가까워지면서 갑자기 회복하고, 동생을 간호하던 언니 클레어가 절망에 빠지게 되는데...
한병철의 설명에 따르면 타자(행성 멜랑콜리아)를 발견함으로써 저스틴은 우울증이라 자기매몰의 공간에서 해방되어 '사랑'을 발견한다. 그리고 파국적 재난은 뜻하지 않게 구원으로 역전된다.(p28)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지막은 트리스탄을 치료하러 온 이졸데가 죽은 트리스탄을 껴안고 그녀 또한 세상을 떠나는 장면이다. 이졸데의 사랑은 죽음을 마무리한다. 제한된 이야기 구조 속에서 트리스탄을 치료하러 이졸데가 가까워질수록 트리스탄의 죽음 또한 가까워진다.
나와 타자 간의 거리가 없어진 것이 원인이라고 한병철 교수는 강변한다.
21c 스마트 폰과 SNS는 우리를 24시간 접속상태로 존재하게 만들었다.
항상적인 온라인-접속은 우리를 '전시 상태'로 만들었다.
전작인 「투명사회」에서 '디지털 파놉티콘'으로 묘사한 전시상태가 우리의 애정관계, 에로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노출되어 있고, 타자의 모든 것을 요구하는 나와 타자의 사랑은 '에로스'가 아니라 '포르노'에 가깝다. 모든 것이 열려있고 보여줘야 하는 상태에서는 은밀함과 비밀이 없다. 항상적인 접속상태에서 서로의 모든 것을 전시 상태로 실시간 보는 관계에서 나와 타자 간의 거리는 사라진다.
거리가 없어지니 만남이 없어진다.
만남이 없어지니 무대가 사라지고, 무대에서 일어날 사건이 사라진다.
헤어짐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나와 타자 간의 거리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모든 것이 보이는 상태를 긍정으로 여긴다.
은밀함과 비밀을 허용하지 않는 전시상태의 관계는 「피로사회」와 「시간의 향기」에서 말한 '신자유주의'의 자기 착취의 망령과도 이어진다. 거리를 상실한 '포르노'적 전시상태에서 남는 것은 노출뿐이다. 에로틱한 기대가 사라진다.
「투명사회」에서 한병철 교수는 벌거벗은 '포르노'와 다른 에로틱한 것, 에로스를 이렇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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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우리 사회의 현실에 그의 말을 적용해본다면,
우리의 사랑은 자로 잰 듯한 모범상을 요구하고 기대한다.
수많은 결혼정보업체들에 전시된 개인들의 신상은 그 자체로 '포르노' 적이다.
모든 것을 알고 넘어가야 하는 계산된 사랑 앞에서 모험도 위반도, 초월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다'인 사람을 기대하니 '그게' 없어지면 아무것도 아닌 중고품이나 소모품이 되어 버려 버린다.
그걸 '이혼'이라고 부르면 좋을 것이다.
거리의 부재로 타자가 사라진 상태에서 타자와 구별되어 인식하던 '나'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나'의 공백을 역시 21c 온라인의 방법으로 해소하려 한다.
셀피, 셀카는 자기 확인을 하는 가장 손쉽고 좋은 방법이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촬영하며 보게 되는 나, 그리고 sns에 올리면 던져지는 사람들의 반응.
'좋아요'에는 한병철 교수가 말하는 긍정의 망령이 역시 포함되어 있다. '좋아요'는 자기 확신을 가져다 주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셀피는 자기 확인의 방법이다.
그리고 자해는 셀피보다 발전된 자기 확인의 방법이다. 자해를 통해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느끼게 된다.
자해 사진은 우리나라에선 아직 확산되지 않았지만 텀블러만 들어가도 유럽, 미국의 10~20대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병철 교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강연장에 라디오와 mp3를 겸한 조그만 기계를 들고 왔다.
비밀스러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그런 장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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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서 앱을 깔면 어플의 기능과 상관없는 권한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마트폰을 통한 24시간 sns 활동은 물론이거니와 이런 '나'에 대한 침략은 일상화되어서 조심스러워하는 게 이상해질 정도다.
자신의 얇아지는 책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봤다고 했다.
독일의 기자는 한병철의 책은 점점 줄어들면서 결국엔 사라질 거라고 했다 한다.
0에 수렴한다는 이야기인가??? ㅎ
갈수록 줄어드는 책의 두께에 대해 질문할까도 생각해봤는데
'의도성'이 짙은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기 있는 생각을 전하고자 하는 철학자의 태도로서 틀리지 않다고 봤다.
100p에 1만 원인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이라는 이름값에
김태환이라는 서울대 교수의 번역을 생각하고
그다지 많지 않은 독자를 고려한다면 독자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금액이다.
자기애와 나르시시즘의 차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자기애는 안정적인 자기의 발견인 반면, 나르시시즘은 자기늪에 매몰된다는 것이다.
나만의 해석으로 받아들인다면,
자기애는 자기 존중, 나르시시즘은 자기도취 혹은 자기중독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은 몸을 경영하려고 한다고도 말했다. 피트니스 중독과 셀카가 이의 반증이다.
경험해야 할 몸을 '경영'의 대상으로 보니 몸이 나로부터 소외되어 버린다.
나로부터 소외된 몸은 촬영의 대상으로 빠져버린다.
01
작년인가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의 초청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보고 왔다고 했다.
와우!!!
02
이번 귀국은 「에로스의 종말」출간 기념이 아닌 연로한 부모님을 뵙기 위함이라고 했다.
03
행사 후 사인서적 행운권에서는 떨어졌다.
04
교보생명 1층의 파리크라상은 정말!! 맛있다.
05
철학자는 물론 모두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병철 교수는 정치에 소극적인 태도를 가지게 만드는 논문, 프로젝트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 했다.
06
슬라보예 지젝을 좀... 싫어하는 듯. ㅎㅎㅎ
07
「아름다움의 구원(번역명)」등 독일에서만 출간한 몇 권의 책이 더 있는데 한국에서는 발간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외에 몇 권의 책을 더 말해주었는데 한국은 아직 자신의 책이 나올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5권의 책(피로사회, 시간의 향기, 투명사회, 심리정치, 에로스의 종말)을 보건대 한병철 교수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08
「에로스의 종말」「시간의 향기」 다음으로 예쁜 책 표지를 가진 한병철 교수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