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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May 20. 2018

108 『농담』 - 밀란 쿤데라

『농담』 - 밀란 쿤데라,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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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3

그렇다, 나의 전락에는 그 어떤 진짜 드라마도 선행하지 않았고, 나는 내 이야기의 주체라기보다는 차라리 대상에 가까웠으며

철조망 키스(p178)의 원조가 이 책이었구먼...

쿤데라의 데뷔작(1967)으로 농담 한 마디... 농담 한 문장으로 전도유망한 자연과학 대학생에서 광부와 군역이라는 처벌을 받은 주인공 루드비크 얀이 그나마 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겪는 사흘간의 이야기다.

농담 하나도 수용하지 못 하던 야만의 시대를 지나 삼십대 중반에 이르러 진실로 세상에 필요한건 진통제가 아니라 변비약임을...

진통제 과복용으로 자살 하려다 그게 사실 진통제 통에 든 변비약이라 자살은 실패, 자존심은 실례...

역사야말로 통증을 억누르기 보다는 변비약을 들이키고 장 청소를 하라는...

다만,
루드비크가 군인 시절 사랑하던 루치에.

그녀가 그와의 육체관계를 거부했던건 순결 때문이 아닌 윤간을 당한 상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과 가해자들이 도둑질로 잡혀갔다는 결론은 어떤 농담으로 희석시키거나 어떤 문학적 시도로도 회생되지 않는 비극이었고, 작가 자신도 이념세계의 갈등과 역사의 폭주가 아닌 인간 세상의 비극이며 비극이며 어떤 생에 씌인 굴레로 마주하려 한 것은 작가를 넘어 어떤 절망을 느끼게 한다.

역사의 농담같은 희롱에 휩쓸린 사람은 사디스트인 루드비크라기보다는 루치에가 되어버렸고, 50년 전과 지금의 생각은 많이 달라졌음이다.

물론 이 소설 자체가 우스꽝스럽고 잔인한 역사의 변덕에 던지는 농담이라는 사실. 종교나 공산주의나 그 어떤 이념들의 투쟁도 블랙코미디의 대상임을.

p491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 버리고 만다. 그 신화는 날이 갈수록 신화의 원인이 되었던 주요 인물들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어 버린다. (중략) 이제 예전의 얀이 아닌 다른 얀이 역시 예전의 제마네크가 아닌 다른 제마네크 앞에 서 있는 것이며, 내가 그에게 날려야 하는 따귀는 다시 되살릴 수도 다시 복구할 수도 없이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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