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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May 27. 2018

113 『모비 딕』 - 허먼 멜빌

『모비 딕』 - 허먼 멜빌, 열린책들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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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 - 고래잡이 항해는 환영할 일이었다. 경이로운 세상으로 가는 커다란 갑문이 활짝 열리자 내 멋대로 만들어 낸 맹렬한 공상 속에서 둘씩 짝지어 영혼 깊숙한 곳으로 헤엄쳐 들어오는 고래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고, 그 한복판으로는 눈 덮힌 봉우리처럼 두건을 뒤집어쓴 커다란 유령이 하나 떠다녔다.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흰 향유고래 모비 딕을 향한 에이해브(아합) 선장의 욕망을 선두에 달고 항해를 떠나는 피쿼드호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이방인 선원인 이슈마엘이 남반구의 미지의 원주민이자 작살잡이인 퀴퀘그를 여관방에서 만나 배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하고, 고래와 포경에 대한 사실적 접근을 위해 백과사전식의 관련 지식이 중간중간 배치되어 있다.

얼핏 지루하기도, 향유고래에 관해 밝혀진 현대의 사실에 부합하느냐 하는 의문도 드는 그 시간을 버티고(?) 하권 중후반부에 이르면, 드디어 떠들기 시작하는 에이해브 선장과 일등항해사 스타벅(스타벅스의 이름이 유래된 캐릭터) 등의 의견 갈등이 점화되면서 소설이 힘을 받는다.

p68 - 술에 취한 기독교인보다는 정신 말짱한 식인종하고 자는 게 낫지.

p240 - 이 바다 괴물(향유고래)은 추방당했지만 정복할 수 없는 고래 종족의 카인이어서

p312 - 사람을 가장 미치게 만들고 괴롭히는 것, 모든 비참함을 자극하는 것, 악의를 내포하는 진실, 근육을 못 쓰게 하고 뇌를 굳게 만드는 것, 삶과 생각을 물들이는 교묘한 악마성, 미쳐 버린 에이해브에게는 이 모든 악이 모비 딕이라는 형태로 가시화했고 그리하여 실제로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p460 - 인간이란 누구나 포경 밧줄에 싸인 채 살아가는 것을, 모든 인간은 목에 올가미를 건 채 태어나는 것을.

성경 속 이교도들, 주류에서 버림받은 이름을 내려받은 이들을 태운 배덕의 용광로와도 같은 피쿼드호. 이교도들의 포경으로 사치를 향유하는 기존질서를 수호하는 뭍의 지배자들. 모비 딕을 향한 에이해브 선장의 자기파괴적인 몰입, 모비 딕을 발견하는 선원에게 내건 스페인 금화.

하 p435 - 에이해브는 절대 생각을 하지 않아. 오로지 느끼고, 느끼고, 느낄 뿐. 한낱 인간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는 일이지. 생각하는 건 주제넘어. 그런 권리와 특혜를 누리는 건 신뿐이야. 생각은 냉철하고 침착한 행동이며, 그래야 해. 그런데 그러기에는 우리의 못난 가슴이 두근거리고, 우리의 못난 두뇌는 지나치게 고동치거든. 하지만 가끔은 우리의 뇌가 너무 차분한 것 같아. 얼어붙은 것처럼 차분한 나머지, 내용물이 얼어 버린 유리잔처럼 낡은 두개골이 쩍 갈라져 뇌를 흔들어 댄다고 생각했지.

허먼 멜빌 서른 두살(1851)에 완성한 소설. 악평 일색과 참담한 판매 실적으로 작가 인생도 피쿼드호와 에이해브 선장처럼 일순간 침몰해버린다. 생활고와 세상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작품활동을 꾸준히 하다가 1891년 세상을 뜬다.

잡을 수 없는 욕망을 향해 뛰어드는 에이해브 선장의 불나방 같은 면모는 그럴 수밖에 없지만, 혹은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교수대에 목을 디미는 갈증같다. 어쩌면 절망을 비난하는 부조리한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부서지고 침몰한 평판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벽을 향해 고집스레 계속 글을 썼던 허먼 멜빌의 삶이 보이기도 하고, #헤밍웨이 의 #노인과바다 를 연상하게도 한다.

작가의 삶과 맞닿은 소설은 왜 이리도 슬픈걸까.

절망을 안고 욕망을 뒤쫓는 소설이 #인간실격 이었다면, 이 소설은 욕망을 안고 절망을 뒤쫓는다. 극단의 길을 마주할수 있는 건 문학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p.s. 열린책들 세계문학 중 가장 인상적인 표지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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