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셨네
-명심보감 입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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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벌이는 좋지 않았어도 꾸준히 수입이 있었고, 어머니는 5남매를 키우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을 마무리할 무렵 어머니는 내년에는 도시로 이사를 갈 것이라고 하셨다.
방 두 칸에 온 가족이 몽땅 모여 살았지만 그럭저럭 불편함이 없었던 터라 이사 간다는 것에 대한 별 느낌은 없었다.
이삿짐 트럭을 타고 한참을 달려 낯선 2층집 앞에 내렸다.
부모님은 없는 돈을 알뜰살뜰 모아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유일했을 고정자산을 마련하신 것이었다.
우리 집은 그렇게 넉넉하지도 않았지만, 딱히 사는 게 불편하지도 않은, 기억에 남는 금전적인 사건사고도 없는 평범한(아니 어쩌면 매우 훌륭한) 집이었다.
아버지는 빚지는 것, 그러니까 금전적인 채무를 떠나서 모든 것에 대해 빚지는 행위에 대해 강한 경계를 갖고 계셨다.
그러한 아버지의 태도는 자녀들에게 무수한 잔소리 폭탄으로 투하되었고, 그 결과 대체적으로 아버지의 자식들은 금전적인 채무를 포함해서 빚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다만, 레버리지에 대한 반감도 같이 이식되어서, 딱히 경제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낸 자녀도 없다. 다들 평범하게 자기 몫을 하고 살고 있다.
다시 2층집으로 돌아와서
이 집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질 수 있으니 2층 집의 구조를 기록해 둔다.
같은 건축업자가 지었는지 그 골목의 2층집은 모두 비슷했다.
1층은 거실, 안방, 작은방, 부엌 방, 작은 욕실
2층은 안방, 작은방, 작은 욕실, 주방
1층 바깥쪽은 작은 화단, 연탄광 재래식 화장실, 연탄보일러
2층 바깥쪽은 연탄보일러
1층 거실은 굉장히 좁았고 보일러 선도 안 깔려 있었으며 TV도 없었기에 밥 먹을 때 빼고는 잘 사용하지는 않았다. 밥은 앉은뱅이 밥상에 차려 거실에서 먹곤 했다.
그마저도 겨울엔 추워서 안방에서 식사를 했다.
TV는 1층 안방에만 있었다. TV를 보려면 별수 없이 안방으로 들어가야 했고, TV 채널에 대한 전쟁은 일상 다반사였다.
1층 작은방은 처음에는 누나들이 쓰다가 내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에는 내가 쓰게 되었다.
2층 안방에는 잘 안 쓰는 TV가 한대 있었다. 가끔 TV채널 전쟁에서 졌지만 정말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는 경우에는 2층 안방에 가서 보곤 했다.
2층 작은방은 잡동사니가 가득한 창고였다.
옥상은 존재했지만 계단은 따로 없고 사다리가 하나 있었다. 사다리는 튼튼해 보이지도 않고 굉장히 가팔라서 18년 동안 딱 한번 올라가 봤다.
재래식 화장실은 가족들의 수많은 민원요청으로 수세식 화장실로 바꿔보려고 했지만 정화조를 묻을 공간이 없어 그 집을 떠날 때까지 계속 재래식으로 남아있었다.
앞으로 18년 동안 나는 이 집에 살면서 중, 고등, 대학, 백수시절을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