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과 패배선언

by 달리는 느림보

2015년쯤일까?


취업하고 2~3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동안 부모님의 연말정산 인적공제는 셋째 누나가 가져가고 있었다. 다른 누나들은 한국에 없거니와 나는 기나긴 백수생활로 연말정산을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연말정산을 하긴 했지만 벌이가 얼마 안 되고 온 가족 인적공제를 받으니 추가로 뭔가 더 얹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나도 취직을 했고 연말정산을 시작했으니 같은 자식인데 왜 누나만 부모님을 인적공제 대상자로 써먹는지 약이 올랐다.


하루는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말을 꺼냈다.


“아버지 올해도 누나가 연말정산할 때 부모님을 인적공제 대상자로 올려서 공제를 받은 모양인데요...”

“...”

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다음 말을 하라는 의미였다.


“아니 누나도 자식이고 나도 자식인데 왜 누나만 공제를 받고 나는 못 받아요?”

“...”


아버지는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차피 올해는 넘어갔고 내년엔 제가 연말정산할 때 부모님을 인적공제 대상자로 올리고 싶어요.”


아버지는 내 말을 다 듣고도 아무 표정 변화 없이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걸 하면 느림보 네가 얼마나 이득을 보는 거야?”


갑자기 멍해졌다.

그런 질문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왜 그렇게 작게 구냐던지, 누나에게 양보하라던지, 그래 내년엔 그렇게 하려무나 라던지 아니면 부모님을 한 명씩 공평하게 나눠서 등록하라고 하던지..... 내가 예상했던 답변이 몇 개 있었지만 그 범위를 벗어났던 것이다.



“아니. 돈이야기가 아니잖아요. 같은 자식인데 공평하게 해야지 왜 약 오르게 누나만 그러냐는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이득을 보냐니까? “


“아니 돈이야기가 아니라니까요?”

돈이야기였다. 나는 입으로는 딴말을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벌이가 적은 직장인은 부양가족 공제를 넣어봤자 세액에 차이가 별로 없다.


많아야 20? 30? 아버지가 주시려나? 받을까? 말까?


“한 2백 정도 차이가 나?”


차이가 많이 나는 금액이 아버지 입에서 나오자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럼 내가 1년에 2백을 너에게 이맘때쯤 매년 주면 이제 이런 이야기를 안 할 거냐?”


“아니 돈이야기가 아니라니까요 참.....”

돈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러자고 말하기엔 내가 너무 속물 같아 보였다.


더불어 마치 겨우 그 정도 돈에 남매간에 우애를 깨트리고 불화를 만들려고 하는 거냐?라고 질책하는 듯했다.


”됐어요. 앞으론 이 이야기는 안 할게요. 돈을 주실필요도 없어요. “


“나는 느림보가 누나들과 무슨 이유던지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버지는 음의 높낮이가 없는 잔잔한 말투로 말씀하셨다.


나는 졌다. 완전히 패배했다. 자식끼리 무슨 이유에서든지 싸우지 않기를 바라는 딱 하나 아버지의 소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뒤로는 누나들이 뭐라고 하던지 다 뜻대로 맘대로 하라고 양보했다.


가족들은 왜 그러는지 몰랐겠지만 어쨌든 그 뒤로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날 뒤로는 아버지가 하시는 어떤 요구도 다 군소리 없이 들어드렸다.


인간적인 큰 벽을 앞에 두고 더 이상 무의미한 반항은 멈추었다.


고2시절 몽둥이를 한 대 맞고 시작했던 기나긴 반항은 대학시절을 지나 백수시절, 결혼에 취업에 아이까지 낳고도 정신을 못 차리다가 그날의 대화 한 번에 완전히 종식되었다.


나는 작고 아버지는 컸다.


나의 작은 마음은 죽었다 깨어나도 아버지를 이길 수가 없었다.


- 물론 그 뒤로 아버지에게 연말정산의 ‘연’자도 꺼낸 적은 없었고 그것 때문에 돈을 받은 적도 없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