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백수생활 중이었다.
주로 독서실에서 생활하고 가끔 친구를 만나 PC방을 가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밤에 집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몹시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나에게 물어왔다.
“어디서 오는 길이냐?”
“독서실이요. “
뭘 새삼스럽게 묻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버지는 내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어디서 오는 길이냐니까?”
이미 대답을 했는데 다시 물어본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냥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바다이야기 그런데 다니는 거 아니야?”
바다이야기
2004년부터 광풍이라고 할만한 일본의 파칭코 같은 사행성 오락실이다.
도박성이 매우 심해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로 흥망성쇠가 화려했었다.
하지만 난 바다이야기에 갈만한 돈이 없었다.
독서실비 밥값 책값하면 겨우 끝날정도의 용돈을 받고 사는 처지에 바다이야기에 가서 돈을 탕진했다면 밥이라도 먹으려면 집에만 붙어있어야 할 것이었다.
뜬금없는 황당한 의심에 어이가 없었던 나는 아버지에게 일갈했다.
“바다이야기에 갈만한 용돈을 주신적도 없으면서 무슨 바다이야기예요? 뭐 거기가 1~2만 원 들고 가는 덴 줄 알아요? “
그리고는 내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백수생활이 길어지자 아버지는 내 하루일과를 궁금해했지만 그렇다고 따라다니며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여러 가지 상상을 하셨던 모양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쌓이고 쌓였던 게 많은 나는 아버지의 밑도 끝도 없는 의심에 폭발해 버렸고 며칠을 아버지를 본체만체했다.
아버지도 며칠은 그러려니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던지 어느 날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워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쓸데없는 의심을 한 것은 유감으로 생각한다.”
‘유감으로 생각한다’ 고집세고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치적 사과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별 반응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버지가 쓸데없이 뭘 좀 의심을 했기로소니 이렇게 사과까지 할 정도로 내가 밀어붙일 일이었나? 내가 3배쯤 나이차이나는 어른에게 할 짓이 아니었다는 후회가 들었다.
따로 대꾸는 안 했지만 그 뒤로는 집을 나가고 들어올 때 인사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다이야기’ 사건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