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원룸업자의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내 마음속에는 세 개의 가격이 있었다.
가장 높은 것은 아버지가 원하는 가격
아버지는 2층 집이 있는 골목길에서 내놓은 물건가격을 어디서 들으신 모양이다.
그 집은 몇 년 전에 리모델링을 한집이었다. 그리고 그 가격에 내놓은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집의 매도희망가와 똑같은 가격을 내게 일러주었다.
두 번째는 나의 희망가격
오래된 단독주택임을 감안하여 최대한 빨리 거래될 수 있는 정도의 가격을 설정해 두었다.
세 번째는 마지노선
그 이하로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심리적 저항선이다.
약속된 날 원룸업자의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는 원룸업자, 원룸업자가 부른 공인중개사, 그리고 또 한 명이 있었다.
원룸업자와 한 명은 나의 건너편 소파에 앉고
나와 공인중개사는 나란히 앉았다.
동네 근황과 좋지 않은 부동산 경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고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을 보며 물건확인을 시작했다.
집을 한번 보자고 할 줄 알았지만
전문가들은 굳이 실물을 보지 않고 건축물대장만으로도 그림이 그려지는 듯했다.
이제 서로 원하는 가격을 말할 차례였다.
원룸업자는 기어이 자신이 가격말하기를 거부하며
나에게 먼저 카드를 내놓기를 권유했다.
나는 아버지가 일러준 가격을 말했다.
"집주인인 아버지께서는 00원을 원하세요."
원룸업자는 질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그 가격은 저희도 남는 게 없어요."
"사장님, 그 가격은 중개사무소에 내놓고 몇 년 지나도 거래가 쉽지 않은 가격이에요."
내 옆자리에 앉은 공인중개사도 거들었다.
그 사무실에 내 편은 없었다.
어차피 그 금액은 나도 큰 기대는 없었다.
내 카드를 보여줬으니 이제 상대방이 카드를 보여줄 차례였지만
여전히 상대방은 자신의 카드를 보여주기 주저했다.
얼마를 부르려고 저러나 싶었다.
여러 번 사양의 말이 오고 가고 나서 나는 말했다.
"어차피 제가 집주인이 아니고, 집주인이 원하는 가격은 제가 말씀드렸으니
이제 사장님이 원하시는 가격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가서 아버지와 상의해 보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원룸업자는 자신이 원하는 가격을 조심스레 말했다.
마지노선과 내가 원하는 가격 사이의 어디쯤이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직 내색을 해서는 안된다.
나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고 담담하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일단 가서 아버지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네 사장님 아버님 잘 설득해 주세요."
그 길로 나는 아버지에게 가서 원룸업자와의 대화를 전달했다.
아버지는 몹시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 거래는 성사되어야만 한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