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용 유아의자와 저녁산책과 목욕탕과 나

by 달리는 느림보

기억, 언제까지고 남아있는 절대 잊히지 않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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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타고 다니던 큼지막한 성인용 자전거 앞쪽에 유아의자를 설치하셨다.


아직 목도 못 가눈 갓난아이를 보면서 나중에 자전거에 태우고 다닐 생각에 적잖이 신나셨던 모양이다.


무언가 기억이 남아있을 정도로 켰을 무렵 나는 아버지 자전거에 붙어있는 유아의자를 보며 그 의자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자식들을 위해서 대대로 쓰던 그런 물건...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으니 누나들은 유아의자는커녕 자전거에 태워준 적도, 어딘가를 데리고 다닌 적도 없었고, 나만 그렇게 애지중지 자전거에 태우고 돌아다니셨다고 했다.


내가 제법 다리에 힘이 붙어서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된 후로는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아버지는 종종 내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갔다.


아버지와 손을 잡고 동네를 돌아다니면 마주치던 동네어른들과 아버지는 항상 똑같은 질문에 항상 똑같은 답변을 나누었다.


“손자예요?”

“아니 우리 막둥이”

“아이고 아들이 정말 귀엽게 잘생겼네요.”

“허허허허 그래요?”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버지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띠우며 동네를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다.


아버지는 저녁을 먹고 내가 만화영화를 볼시간에 나가자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저녁 산책이 딱히 좋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나가자고 하는데 토를 달수는 없었다.


매번 똑같은 대화의 반복이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함박웃음을 짓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손에 제법 힘이 붙고 나서는 주말마다 목욕탕을 데리고 가셨다.


나는 목욕탕 가는 날이 썩 달갑지 않았다.


온탕의 물은 너무 뜨거웠고, 아버지가 때밀이 수건으로 몸을 밀어줄 때는 너무 따가웠다. 무엇보다 나는 덩치가 작은데 아버지의 등판은 너무 넓었다.


무언가 많이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목욕탕 방문 뒤에는 항상 좋은 일이 따라왔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목욕탕 바로 앞 슈퍼로 나를 데리고 가서 들어가라고 한 뒤 뒷짐을 지고 먼산만 쳐다보셨다.


나는 부지런히 과자를 한 아름 집어 들었다. 아버지는 내 두 손 가득히 담긴 과자봉지를 힐끗 보시고 한마디 던지신다.


“그거면 되겠어?”


나는 그 말을 듣자마다 쪼르르 다시 들어가서 한아름 더 집어 들고 나온다.


내가 다 들지도 못할 정도로 과자를 사들고 집에 가면 잠시동안은 그 과자들은 내 차지였다.


이것도 뜯어서 조금, 저것도 뜯어서 조금...


아버지가 잠깐 쉬었다가 다른 일을 보시러 나가면 누나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과자를 몽땅 뺐어갔다.


하지만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먹을 만큼 먹었고 다음 주면 또 그만큼의 과자가 생길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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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8월, 폭염이다.


딸이 내 눈을 바라보며 묻는다.


“아빠, 이렇게 더운 날에는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면 딱 좋은데...”


“아이스크림 사러 갈까?”


“응응 응응 헤헤헤헤. “


딸 손을 잡고 집 근처 무인아이스크림가게로 간다.


딸을 들여보내고 나는 계산대 앞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서있는다. 딸은 아이스크림 한 개를 집어 들고 내 옆으로 왔다.


“그거면 되겠어? 오빠 것도 사고... 사고 싶은 만큼 사.”


“아빠 우와~ 그래도 돼?”


기억... 잊히지 않는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