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공무원 글투

공공언어 톺아보기(9)

by 이무완

먼 옛날부터 벼슬아치나 구실아치는 될 수 있는 대로 말을 유식하게 하려고 하고 글을 어렵게 써서 권위를 지키려고 했다. 요즘이라고 사정이 별다르지 않다. 내남없이 국민의 심부름꾼을 부르대는 공무원들이 지난날에 공문서에 써온 버릇을 여태껏 버리지 못하고 어설프고 아름답지 않은 한자말을 따라서 쓰니, 이 한심한 노릇을 대관절 어찌 보아야 할까. 어려운 한자말이나 바깥말을 끌어다 써서 권위를 보려주려고 했는가 모르겠지만, 공공에서 쓰는 말은 읽는 사람을 배려하여 쉽고 친절해야 한다.

20250717_154706.png 도교육청에서 학교에 보낸 공문

갑작비를 퍼붓는 바람에 나라 곳곳이 물난리다. 그래서 허둥지둥 내려 보내느라 그랬는지 공문을 보면 한자말을 바깥말 질서로 엮어 쓰던 못된 옛 버릇이 그대로 보인다. 차례로 톺아본다.

‘집중호우 등 풍수해로 인해’ ‘집중호우 등 풍수해로 인한’은 일본글을 뒤치던 버릇이다. ‘~으로 말미암아’라고 할 말인데 인할 인(因)에 ‘-하다’를 붙여 ‘~으로 인하여’라고 버릇처럼 쓴다. ‘~ 때문에’나 ‘~(으)로’만 써도 너끈한데 군더더기 말마디인 ‘인한’을 보탠다. ‘갑작스런 비바람으로’나 ‘갑작스런 비바람 때문에’로 썼더라면 훨씬 알아보기 쉽겠다.

‘~는 경우’는 영어 ‘in case’를 뒤치던 버릇이다. 우리말로는 ‘~할 때’로 쓰면 한결 알기쉽고 말맛도 깔끔하다.

입음꼴(피동형)로 쓴 움직씨도 짚지 않을 수 없다. 우리말은 입음꼴보다 제힘꼴로 써야 자연스럽다. 그런데 ‘지장이 되지 않는다’ ‘안전이 확보된다’는 모두 입음꼴이다. 입음꼴은 움직임 주체가 또렷하지 않아 책임을 흐리터분하게 하는 구실을 한다. 학교장이 임자말이라면 ‘운영에 지장이 없는’이나 ‘안전을 확보하라’고 움직임 주체를 더욱 또렷하게 써야 한다.

끝으로 공공에서 쓰는 말 가운데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말 하나가 ‘만전을 기한다’는 말이다. 만전은 빈틈 없이, 허술함 없이라는 말이고, 기하다(期하다)는 이루어지도록 애쓴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빈틈이 없도록 애써달라고 하면 될 말이다. 무엇보다 입 발린 소리만 하지 말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부터 잘하면 아랫사람은 저절로 따라가는 법이다. 게으른 말은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일을 가로막는다. 공공에서 쓰는 말투가 곧 그 공공기관의 수준이다.

게으른 글버릇.png 나라면 이렇게 고쳐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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