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83)
함백산은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소도동 살피에 있는 산이다. 해발고도 1572.1미터로 북쪽으로 대덕산(1310.3m), 금대봉(1418m), 북동쪽으로 매봉산(1305.3m)이 있고 남쪽으로는 태백산(1567m)이 줄줄이 이어진다. 높이로 치면 함백산은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덕유산(1614m), 계방산(1577.4m) 다음으로 높은 산이지만 태백산에 가려 덜 알려졌다. 함백산은 겨울이 눈이 많다. 동해에서 습기를 가득 품은 눈구름이 백두대간을 넘으면서, 멀리 황해에서 생겨난 구름이 내륙을 지나면서 이곳에 와 눈을 쏟는다. 함백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나간 백운산 줄기는 고개가 낮지만 한번 내린 눈이 녹지 않고 봄까지 간다.
‘함백산’은 무슨 뜻으로 지은 이름일까. ≪삼국유사≫(일연, 1281) 권 제3 <신효거사가 출가하여 효가원을 짓다> 기사를 보자.
자장법사는 처음에 오대산에 이르러 문수보살 진신을 보려고 산기슭에 띠집을 짓고 머물렀으나, 이레 동안이나 보이지 않으므로 묘범산(妙梵山)으로 가서 정암사를 세웠다.
여기에 나오는 묘범산이 곧 함백산이다. 허목은 ≪척주지≫(1662)에서 ‘대박산’으로 적었다.
대박산(大朴山) 서쪽은 정암 육천인데, 육천 물은 영월에 이르러 큰 강에 흘러 들어간다. 대박산은 태백산 동쪽에 있는데 아래 위로 본적, 심적, 묘적, 은적 같은 암자가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선 ≪대동여지도≫(김정호, 1861)에 ‘대박산’으로, ≪조선지형도≫(1917)엔 ‘함백산(咸白山)’으로 나온다. 요컨대, 묘범산, 대박산, 함백산으로 이름이 바뀌어 온 셈이다.
이들 산 이름을 차례로 대응해 보면 ‘묘(妙)=대(大)=함(咸), 범(梵)=박(朴)=백(白)’이라는 관계이다. ‘묘(妙)’는 ‘빼어나다’는, ‘대(大)’는 ‘크다’는 뜻으로 적은 한자이고 ‘함(咸)’은 [한]이란 소리를 받아적은 한자로 보아야 한다. 이때 [한]은 ‘크다, 넓다, 높다, 많다’ 따위 뜻으로 써온 배달말이다. 한강, 한여울(한탄), 한길, 한숨, 한가위, 한쇼(황소), 한새(황새)에서 보듯 ‘한’은 ‘크다, 많다’라는 뜻으로 썼다. 물론 여기서 뜻이 더 넓어져 ‘우두머리’나 ‘임금’을 가리키는 말로도 썼다. 몽골어에서는 [칸]으로 소리난다. 배달말인 ‘거서간, 마립간’에서 보듯 ‘가나’나 ‘간’이라고 하다가 [한]으로 소리 바꿈이 일어났다. 이때 [한]을 뜻으로 받아 적으면 ‘대(大)’가 되고, 어금지금한 소리로 받아적으면 ‘함(咸)’으로 둔갑했다. 실제 땅이름에서도 비슷한 보기는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삼국사기≫(잡지 제5)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한산현(翰山縣)은 본래 백제의 대산현(大山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은 홍산현(鴻山縣)이다.
‘홍산’은 오늘날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을 가리킨다. ‘대산→ 한산→ 홍산’처럼 바뀌었지만 말밑은 모두 ‘크다, 넓다’는 뜻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정선군 화암면 몰운리와 남면 유평리에 있는 한치(汗峙)가 있다. 두 곳 모두 ‘땀날 한(汗)’ 자를 썼으나 큰 고개라는 뜻으로 봐야 한다.
옛날 동창(東倉)이 있던 곳으로 도로가 개설되기 전 몰운으로 넘어가는 ‘창재’가 있었는데 등짐을 지고 고개를 넘다가 보면 땀이 난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정선군청 누리집 ‘지명 유래’)
등짐을 지고 넘자면 한겨울에도 땀(汗)을 흘려야 하는 까닭에 ‘한치’가 되었다고 하지만, 한자 뜻풀이에 꿰맞춘 해석일 뿐이다. 이때 ‘한(汗)’ 자는 배달말 ‘한’을 나타낼 요량으로 소리를 빌려 적은 한자로 보아야 옳다. 이에 견줘 남면 유평리에 있는 한치는 해발고도 700미터에 있는 분지 마을인데, 다음과 같이 제대로 설명해 놓았다.
‘한치’의 어원에 대해 일반적으로 산 아래에서 마을로 오르내리는 길의 경사가 급해 오고가는 사람마다 땀을 많이 흘린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큰 고개 또는 큰 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정선 남면 지명 유래, 2011, 158쪽)
뒤엣말 ‘백(白)’은 밝다의 말줄기인 ‘밝’을 받아적은 한자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해를 우러러 섬겼다. 이 ‘밝’ 사상은 부족마다 산을 신(神)처럼 섬기는 모습으로 드러나는데, 이런 산을 ‘밝산’이라고 하고 한자로 적을 때는 ‘백(白)’ 자를 썼다. ‘밝’은 [박/불/밭/발/배] 따위로 소리바꿈하면서 나타나는데,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박(朴), 백(白), 불(不), 발(鉢), 배(培․倍), 광(光․밝을), 명(明․밝을), 적(赤․붉을), 주(朱․붉을), 족(足․발), 단(丹․붉을) 따위로 둔갑한다. ‘묘범산’에서 ‘범(梵)’은 우주 원리나 신(神)이라는 뜻으로 쓴 한자다.
‘함백’은 ‘한밝’으로 ‘크고 밝다’는 뜻이다. 자연히 ‘한밝뫼’ 비슷하게 말해오다가 한자로 적으면서 ‘대박산’이 되고 ‘함백산’이 되었다. 그러니 뜻으로 보면 태백산(太白山)과 말밑으로나 뜻으로나 같다. 이에 ≪고한읍지≫(2004)는 “대박(大朴)이 왜 함백(咸白)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태백(太白), 대박(大朴), 함백(咸白)이라는 말은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이다”(365쪽)로 얼버무렸지만, 말밑으로 보면 같은 뜻으로 붙인 이름임에 틀림 없다.
땅이름은 그 땅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그 땅에 뿌리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 생각과 바람이 담기는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꼴이 달라지고 말재기들이 지어낸 의미가 보태지고 뒤섞인다. 그런데 땅이름 유래를 배달말을 생각하지 않고 한자 뜻으로 풀거나 전해오는 이야기로 푸니까 생뚱맞은 유래가 심심찮게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