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한의 말밑(2): 물한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82)

by 이무완

정선군 고한읍에 ‘물한’이라는 곳이 있다. ‘고한’은 ‘고토일’의 ‘고’와 ‘물한’의 ‘한’을 따서 지어낸 땅이름이다. 고토일은 ≪고한읍지≫ 같은 데서는 ‘땅힘이 좋은 오래된 땅’이라서 붙은 이름이라고 했다. 하지만 마을 앉음새나 땅 모양새로 보면 산줄기가 느릿하게 늘어지면서 생겨난 펀펀한 땅이라서 붙은 이름으로 볼 때 한결 땅을 더 잘 설명한다.

그렇다면 ‘물한(勿汗)’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고한군지≫(2006) 설명은 이렇다.


일설에는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에서 물한리재를 올라올 때는 땀이 줄줄 흘러 매우 피로하였으나, 물한리로 내려올 때는 울창한 산림과 맑은 시냇물에 오히려 추위를 느끼고 땀이 들어간다 하여 물한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정암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피로하면 자주 찾아가 땀을 식히던 곳이라 해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물한이골로 들어가 백운산을 넘으면 영월읍 상동읍 구래리에 이르게 되는데, 골이 깊고 맑아 삼복중에도 으스스하고 대낮에도 해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숲이 울창하며 계곡물도 차디차다고 한다.(384쪽)


말하자면 골이 깊고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한여름에도 땀이 차갑게 식는다거나 골짜기 흐르는 물이 차다고 하여 ‘물한’이라고 했다는데 썩 내키지 않는 설명이다.

우리 땅 곳곳에 ‘물한’이라는 땅이름이 있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의 ‘물한’(勿閑)은 ≪여지도서≫에 처음 나오는데, 물이 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일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 만큼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라서 말 물(勿) 자, 한가할 한(閑)를 썼다고도 하지만 말재기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경북 안동시 북후면 ‘물한’(勿寒)은 “마을 이름은 물이 부족함이 없이 많다고 해서 무란기로 부르다가 후에 마을에서 나는 물이 너무 차다고 하여 한천(寒泉), 물한이라 불렀다.”(안동의 지명유래, 안동민속박물관, 2002, 177쪽)고 한다. 그러나 둘다 [물한]이나 [물한] 어슷한 소리를 한자로 땅이름을 받아 적고, 말밑이 흐리터분해진 뒷날에 한자를 어설프게 뒤쳐 지어낸 유래다. 가령, ‘물이 차다’는 뜻으로 쓰려고 했다면, ‘물’도 ‘수’(水) 자로 바꿔 ‘수한(水寒)’으로 적어야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강원도에만 해도 춘천시 북산면 부귀리, 횡성군 안흥면 상안리, 횡성군 서원면 석화리,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에 ‘물안’이라는 곳이 있다. 한자 땅이름은 물안(物安), 무란(舞鸞), 문안(文安)으로 한자를 다르게 썼지만 ‘물 안’을 소리로 받아적은 땅이름이다. 충북 충주시 수안보는 ‘보(洑) 안쪽에 있는 물탕’이라고 해서 ‘수안보(水安堡)’라고 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오주연문장전산고≫(이규경, 18세기)에 “호서 지방 연풍현 수안보 땅에 온천이 있는데 물이 좋다. 아픈 사람들이 모여들며 여기 물도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의 두 줄기가 있다고 한다.(湖西之延豊縣水安保地有溫水。品佳。病者·集。此水亦有冷熱二源云。)”고 적었다. 수안보는 본디 ‘물안보’라고 하다고 한자로 적으면서 ‘수안보’가 바뀐 셈이다.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춘천 북산면 부귀리, 횡성군 안흥면 상안리, 서원면 석화리,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에 있는 '물안'이다.

그런 점에서 ‘물한’은 [물안]을 받아적은 소리로 보아야 한다. 대개 물 안 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물안’이라고 하다가 한자로 적으면서 ‘무란, 물한, 수안’ 같은 생뚱하기 그지 없는 땅이름으로 바뀌었다.

다시 정선군 고한읍 ‘물한’을 보자. 함백산(1572.1m)과 금대봉(1418m)에서 흘러온 물줄기(지장천, 동남천이라고도 하고 남천이라고도 한다)가 갈래에서 만나 사북읍이 있는 북서쪽으로 흘러 내려간다. 1917년 ≪조선지형도≫에서 ‘물한’은 갈래와 사북 중간쯤이 되는데, 지금으로 보면 고한읍행정복지센터를 비롯해 고한초등학교와 고한중․고등학교가 있는, 지장천 건너편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지장천이 휘감듯 슬그머니 흘러간다.

1917년 ≪조선지형도≫와 오늘날 고한읍 물한 일대 지형도(국립지리원)

예전에는 하이원리조트 스키장이 있는 골을 따라 올라가 물한치 고개를 넘으면 영월군 상동면 구래리로 넘어갔다. 지장천 왼쪽에 있는 마을이 ‘물 안’이요 지장천 오른쪽은 자연스럽게 ‘물 바깥’이 된다. ‘물 안’이 ‘무란’으로, 다시 한자로 적으면서 ‘물한’으로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한자를 뒤쳐 땀(汗)이 나지 않기(勿) 때문에 물한(勿汗)으로 되었다는 설명은 재미로 지어낸 유래일 뿐이다. 2023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낸 지형도에는 북서쪽으로 조금 더 내려간 곳에 ‘물한’으로 적어놨지만, 지장천이 흘러가는 남서쪽을 가리키다가 고한읍 인구가 늘면서 이 일대를 싸잡아 일컫는 이름이 되었다.



[참고]

고한읍이란 땅이름을 정식 행정명으로 쓴 때는 1985년부터다。 고토일과 물한리라는 땅이름으로 조선 시대엔 동상면이었고、 광무 10년 10월에 동상면과 동중면을 묶어 동면으로 삼고 동면에 고한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마을 이름을 썼다。 조선 이전엔 제천과 영월에서 남면과 사북、 고한、 삼척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2025. 8. 기준 정선군 고한읍 인구는 4169명으로 정선군에서는 정선읍(9798명) 다음으로 많다. 고한읍은 1985년 사북읍에서 갈려 나와 읍으로 승격하는데, 이때 고한읍 인구는 32,801명으로, 사북읍 23,162명을 더하면 55,963명에 이르렀다. 한때 삼척탄좌 정암광업소를 비롯해 20여 광업소에서 우리 나라 무연탄 생산량의 15퍼센트를 캤으나 1989년 시행한 석탄산업합리화사업으로 고한 지역 탄광들은 잇따라 문을 닫았고 5년 뒤엔 1990년 2만 명 선으로, 다시 5년 뒤인 1995년에는 9,846명으로, 2002년에는 6000명 이하로 인구가 크게 줄었다. 2001년 10월 삼척탄좌를 끝으로 모든 탄광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