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에서 배우는 배달말(89)
[일러두기] 아래 글에서 ‘라’처럼 붉은색으로 쓴 글씨는 아래아(·)를 홀소리로 쓴 글자다.
노목산(1150.2m) 남동쪽으로 흘러내린 골짜기에 ‘노른가리’, ‘노룬가루’라는 데가 있다. 옛 사북 1리 지역으로 한자식 이름으로는 황가리(黃加里), 노음곡(老陰谷) 따위가 있다.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지만 곡식을 말(斗)로 나눌 만큼 아주 인심 넉넉한 마을이라서 ‘노른가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노른가리’는 ‘노른+가리’ 짜임이다. ‘노룬가루’는 ‘노른가리’에서 ‘가리’를 ‘가루(粉)’로 여겨 생겨난 말이다. 지역말에서 ‘가리’나 ‘갈그’, ‘갈기’는 요즘 말로 치면 ‘가루’다. 그래서 ‘감자 가루’를 ‘감재가리, 감재갈그, 감재갈기'라고 했다.
앞엣말 ‘노른’은 ‘늘’(넓은, 늘어진) 계 땅이름이다. 흔히 늘어진 긴 밭이라고 해서 ‘늘밭’이라고 하다가 소리바꿈으로 ‘늘밭→ 늘앗→ 느랏’이 되거나 ‘널밭, 느리밭, 너리밭’ 따위로 바뀐다. 때로 ‘늘’은 ‘누르다’나 ‘늘어지다’로 여겨 黃(누를 황)이나 連(이어질 연), 論(말할 론)으로도 바뀌는데, 오늘날 논산시의 옛이름인 황산(黃山), 연산(連山), 논산(論山)도 모두 ‘늘’이 말밑이다. 정선읍 신월리에 ‘노른골’이 있다. ‘노른’은 ‘넓다’는 뜻으로 쓰던 옛말 ‘노라’가 ‘노로, 노루, 노른, 느르’ 따위로 바뀐 말인데, ‘노른골’은 ‘크고 넓은 골짜기’라는 뜻이다. 더러 ‘노루’라는 산짐승으로 여겨 ‘노루 장(獐)’ 자를 쓴 ‘장동(獐洞)’이나 ‘장곡(獐谷)’을 쓰기도 했다.
뒤엣말인 ‘가리’는 ‘골’로 뒤쳐 생각해 볼 수 있다.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에 ‘아침가리’라는 데가 있다. 한자로 조경동(朝耕洞)이라고 쓴다. 한자를 풀면 ‘아침(朝)+갈이(耕)+마을(洞)’이다. 인제군청 지명유래에서는 “방골 동남쪽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마을에 밭이 적어서 아침나절에 다 갈 수 있었다”고 적었다. 아주 터무니 없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개 끄덕일 만한 설명도 아니다. 인제군 기린면에 아침가리뿐만 아니라 연가리, 적가리, 명지가리, 곁가리, 뱅가리 같은 곳이 있는데, 인제군청 ‘지명유래’를 보면 다음과 같이 모두 ‘가리’를 ‘마을’로 풀어놨다.
곁가리 (방동리) 매봉령 밑에 있는 마을
명지가리 (방동리) 큰 소(沼)가 있던 마을
연가리 (진동리) 맞바우 동쪽에 있는 마을로 뱅가리와 아침가리에 연하여 있으며 연초를 경작했다고 한다.
내 보기에 ‘가리’는 ‘갈이’에서 온 말이 아니라 ‘골(谷)’에 [이] 소리를 보태 ‘골이→ 고리→ 가리’로 소리바꿈하지 않았나 싶다. ‘가리’를 ‘간다(耕)’는 말에서 온 말로 보면, 곁가리, 명지가리, 연가리, 뱅가리 같은 땅이름은 풀 수 없다. 그래서 아침가리는 ‘아침골’, 곁가리는 ‘곁골’, 명지가리는 ‘명지골’로 보아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노른가리’는 ‘늘은골’이 ‘노른골’이 소리바꿈한 다음 한자로 적으면서 ‘노음곡(老陰谷)’이나 ‘황가리’로 바뀌었다고 하겠다.
노랗다 병아리나 개나리꽃과 같이 밝고 선명하게 노르다.
노르다 달걀노른자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
노르께하다 곱지도 짙지도 않게 노르다.≒노리끼리하다.
노르끄름하다 조금 어둡게 노르스름하다.
노르스름하다 조금 노르다. ≒노르스레하다, 노름하다, 노릇하다.
노른색 달걀노른자처럼 밝고 깨끗한 빛이다.
누렇다 익은 벼와 같이 다소 탁하고 어둡게 누르다.
누르다 황금이나 놋쇠의 빛깔과 같이 다소 밝고 탁하다.
누르께하다 곱지도 짙지도 않게 누르다. ≒누리끼리하다.
누르끄름하다 조금 어둡게 누르스름하다.
누르스름하다 조금 누르다. ≒누르스레하다, 누름하다, 누릇하다.
누른색 황금이나 놋쇠처럼 밝으면서 탁한 빛이다.
느리다 기세나 형세가 약하거나 밋밋하다.
느른하다 1. 맥이 풀리거나 고단하여 몹시 기운이 없다. 2. 힘이 없이 부드럽다.
느릿하다 동작이 재지 못하고 느린 듯하다.
늘어지다 공간이나 시간이 더 나가다.
늘펀하다 퍼지르고 앉거나 누운 모양이 펀펀하고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