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화, 귤꽃이 피는 마을이라고?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02)

by 이무완

문태준이 쓴 시에 <귤꽃이 피는 동안>이 있다.


귤밭에/ 소금 같은 귤꽃이 피어/ 향기를 나눠주네// 돌에게/ 새에게/ 무쇠솥 같은 낮에게/ 밤하늘에/ 그리고 내 일기(日記) 위에// 귤꽃 향기를/ 마당 빨랫줄에 하얀 천으로 널고/ 귤꽃 향기를/ 홑겹 이불로 덮고/ 요로 깔고// 귤꽃 향기처럼/ 나는 무엇에든/ 조용하게 은은하게/ 일어나고 (풀의 탄생, 문학동네, 2025)


소금 같은 귤꽃이 피어 향기가 조용하게 은은하게 나는 마을을 떠올려보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데 이름이 ‘귤꽃’인 마을이 정선읍 남서쪽 귤암리에 있다. 귤암리는 1914년 행정구역을 새로 정하면서 귤화(橘花), 의암(衣岩, 옷바우), 만지산, 광석리, 수며리 일부를 묶어 귤화의 ‘귤’과 의암의 ‘암’을 따서 지은 땅이름이다.


귤꽃의 말밑: 주을곶

그렇다면 ‘귤화’는 대체 어떻게 생겨난 말일까. ≪조선지지자료≫에는 ‘橘花洞 귈곳’으로 나온다.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 324쪽) ‘귤암리’에 나온 설명을 보자.


일설에는 귤화라는 지명이 봄철이면 마을에 귤꽃이 만발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나 지금의 귤암리는 <대동여지도>나 조선시대에 발간된 ≪정선읍지≫에 ‘주을곶(注乙串)’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시대 이후 ‘주을곶’이 음운축약으로 ‘줄곶’으로 변했고, 이 말이 다시 ‘귤꽃’의 사투리로 보아 일제시대 행정구역 개편 때 한자로 차용되면서 귤꽃의 뜻인 ‘귤화(橘花)’로 되었다.


간추리면 ‘주을곶(注乙串)→ 줄곶→ 귈꽃→ 귤화(橘花)’처럼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옛 땅이름에서 ‘주을(注乙)’은 ‘줄’을 이두식으로 적은 글자로 보인다. 그런데 ‘주을’이 ‘줄’을 받아적은 이두식 한자라면 ‘줄곶’이 먼저고 ‘주을곶’은 그다음이라야 차례가 옳다. 그러면 ‘주을’이 과연 ‘줄’을 뜻하는 말인가 하는 물음이 생긴다.

주을문-horz.jpg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을곶과 주을문과 주을내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153권, 지리지 강원도 강릉대도호부)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봉화가 다섯 곳인데, (가운데 줄임) 사화(沙火)(북쪽으로 연곡 주을문에 응한다.) 주을문(注乙文)이다.(북쪽으로 양양 임내 동산(洞山)에 있는 양야(陽也)에 응한다.)

(원문: 沙火、【北準連谷 注乙文】 注乙文。【北準襄陽任內洞山 陽也】 )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바로 ‘주을문(注乙文)’이다. 강릉대도호부에 봉화가 다섯 곳인데, 연곡에 ‘주을문’이 있다고 썼기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주문산봉수’로 쓰고, 북으로는 양양부 ‘양야산’ 봉수와 남으로는 ‘사화산’ 봉수과 응한다고 했다. 이는 곧 ‘주을문’ 봉수와 ‘주문산’ 봉수는 결국 같은 곳으로 볼 수 있는데, ‘주을문(注乙文)’이 ‘주문(注文)’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주을문’이나 ‘주을곶’에서 ‘주을’이 무엇을 뜻하는 바가 같은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동여지도>나 <조선지형도>로 보면 ‘주을문(주문)’은 바다로 땅이 툭 불거진 곳이다. 이런 데를 우리는 ‘곶’이라고 했다.

화접리.jpg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지도: 조선지형도, 1917)

‘주을’이 들어간 땅이름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가 있다. 화접리를 옛날엔 ‘주을내(注乙內)’라고 했다. 전하는 말로는 ‘줄이 지나간 마을’이라고 해서 ‘줄흘내, 주을내’처럼 되었다고 하는데, ‘주을내’가 어떻게 ‘화접(花蝶)’으로 둔갑했을까 싶다. 화접을 곶 화(花), 나 접(蝶) 자로 새기면 ‘곶나’가 된다. 아마도 ‘곶내’를 ‘꽃내’로, 이를 ‘꽃나리’로 말해왔는데 좋은 마을이름으로 적으려는 마음이 보태지면서 ‘화접’이 된 듯하다. 뒤엣말 ‘내’는 벌판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고 냇줄기를 가리키는 말로도 썼다. 땅 모양새로 볼 때 꽃내(꽃나리)는 불암산 줄기가 동남쪽에 있는 벌판으로 밀고 내려온 산자락 끝에 있다. 곶 끄트머리에 있는 벌 마을이다.


‘주을’은 ‘곶’을 가리키던 말이 아닐까

이렇게 보면 ‘주을(注乙)’은 곧 ‘곶(串)’이라는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잘 알다시피 ‘곶’은 툭 불거져나온 곳이라고 하지만 ‘굼’처럼 우묵하게 들어간 곳을 뜻하기도 한다. 바다나 강뿐만 아니라 내륙에서 배 대기 편하게 쑥 들어간 곳에도 ‘곶’이란 이름을 곧잘 붙여 썼다. 먼 옛날엔 ‘곶’을 ‘고시(古尸)’, ‘고자(古自)’, ‘고차(古次)’, ‘홀차(忽次)’ 따위로 썼고, ‘홀차’가 ‘구’(口)로 바뀌기도 했다. 뜻으로 보면 ‘구(口)’는 ‘문(門)’으로 이어지고 ‘문(門)’은 소리로 ‘문(文)’과 이어진다.

귤화.jpg 정선읍 귤암리 귤화마을 (지도: 조선지형도)

‘주을’은 ‘줄’인가, ‘곶’인가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주을’을 ‘곶’과 같은 뜻으로 보면 ‘주을곶’은 ‘곶 곶’이 된다. 주을곶마을(귤화마을)은 병방산과 구뎅이산 줄기가 조양강 쪽으로 밀려나온 데다 강물이 굽이치면서 나팔봉 아래를 깎아내려 물이 깊고 느릿하게 흘러 배 대기에 좋은 곳이다. 어디든 ‘곶’이라고 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한편으로는 지역말에서 ‘길’과 ‘질’, ‘귈’이 어금지금하게 소리나는데, 어쩌면 줄처럼 긴 곶으로 보아 [쥘곶]이나 [긜곶]으로 소리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더욱이 [긜], [귈]을 ‘귤’로 내남없이 말하고 들어온 탓에 [쥘꽃]이나 [귈꽃], [귈꽃]처럼 귀밑으로 엇듣고 귤 귤(橘), 꽃 화(花)를 써서 마을 이름을 ‘귤화’로 받아적었을 수 있다.


배달말 한입 더

귤(橘) 한자말에서 왔지만 이미 삼국 시대 이전부터 써온 말이라서 말밑이 한자말인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한자 귤(橘)을 고대 중국어로는 [크룻]이나 [크윗]으로, 중세 중국어로는 [귇], [귓], [규웃]으로 소리냈는데 '귤'과 어슷한 소리가 난다.

감귤(柑橘) 귤과 밀감을 싸잡아 가리키는 말.

밀감(蜜柑) 감귤 가운데 온주밀감(溫州蜜柑, mandarin orange)을 가리키며, 일본어 [미캉](みかん)에서 왔다. 1911년 프랑스 신부인 에밀 타케(Emile Taquet)가 일본에서 묘목을 가져와 제주에 심으면서 퍼졌다.

금감(金柑]) 감귤로 가운데 가장 작은 열매가 달리는데 껍질째 먹는다. ≒금귤, 동귤. '낑깡'이라고도 하는데 일본말 킨캉(きんかん)이 말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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