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03)
정선군에는 ‘지르넘이’라는 고개가 있다. 정선 읍내에서 북평면 남평리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강원도 땅이름의 참모습 색인집≫(조선지지자료 강원도편, 649쪽)에는 정선군 군내면에 “內半占 지르넘미”라고 적어놓았는데, 이는 ‘지르넘이’나 ‘지르너미’를 잘못 적은 것으로 보인다. 외반점(外半占), 반점치(半占峙), 반점리(半占里) 같은 관련 땅이름도 보이는데, 모두 ‘지르넘이’와 관련이 있다. 조선 후기 ≪관동읍지≫(1871) 도 이 고개를 ‘반점치’(半占峙, 半點峙)라고 적었다.
정선군청 누리집 ‘지명 유래’의 덕송리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본 리는 조양강이 회류하고 있으며, ‘남평’으로 질러가는 반점치(半峙)를 사이에 두고 취락이 형성되었다. 정선읍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라고 한다.
내반점(內半點) : 북평면으로 넘어가는 반점재 안쪽에 있다 하여 붙은 이름
외반점(外半點) : 반점재 너머 바깥쪽에 있다 하여 붙은 이름
반점재를 기준으로 정선읍 납덕마을에서 올라가는 쪽이 ‘내반점’, 고개를 넘어 남평리 방향이 ‘외반점’이니, 한자 풀이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조선지지자료≫(1911) 무렵에는 ‘반점치’·‘반점재’와 더불어 ‘지르넘이’라는 지명도 함께 쓰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렇다면 ‘지르넘이’가 어떻게 ‘반점치’로 바뀐 것일까. ≪표준국어대사전≫은 ‘반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한 점의 절반
[2] 아주 짧은 시간(=반시, 시반)
[3] 매우 적은 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요즘 사람들은 ‘반점’을 쉼표(,) 정도로만 알지만, 과거에는 시간 단위로 널리 썼다. 윤석중의 동시 <넉 점 반>에서 ‘네 시 반’을 뜻하는 것처럼, 옛말에서 ‘반 점’은 반 시간보다 약간 모자라는 짧은 시간을 의미했다. 이런 뜻을 떠올려 보면, 반점치는 빙 돌아가지 않고 곧장 질러 가는 빠른 고개, 즉 시간을 덜 먹는 지름길이다. 자연히 ‘지르-(질러 가다)+넘-+이’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볼 수 있다.
≪해동지도≫(1750년대)에서도 관아에서 북면으로 갈 때 조양강 물길을 따라 굽이 돌아가지 않고 반점치를 넘어 이동한 기록이 보인다. 강을 따라가는 길이 에움길이었다면, 반점치를 넘는 길은 분명 지름길이었다. 그래서 토박이들은 ‘지르넘이’라 했고,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반점치’, ‘반치’ 따위로 둔갑한 셈이다. 비슷한 땅이름은 우리 땅 곳곳에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정선군 임계면에 ‘계립마동(지르마골)’, 동해시에 ‘지르매재’가 있다.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26): 질러가는 지르매재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99): 계립마동, '지르네미' 흔적이 스민 땅
#지르매재 #지르넘미 #지르네미재 #반치 #반점치 #반점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