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99)
정선군 임계면 금방동 북서쪽에 ‘계림마동’이 있다. 닭 계(鷄), 수풀 림(林), 말 마(馬), 골 동(洞) 자를 쓴다. 한자 새김으로는 어떻게 생겨난 땅이름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정선 임계면 지명유래≫(임계면, 2011, 150쪽) 설명을 보자.
금방동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다. 짐을 실어 나르는 소나 말의 등처럼 생긴 곳에 위치한다고 해서 ‘길마골’이라고 했다. ‘길마’는 소나 말의 등에 얹는 안장을 뜻하는 말로, 이 말이 ‘질마’, ‘지르마’로 변했다. ‘길마골’은 ‘지르마골’로 변하기도 하지만 ‘기르마골’로도 변해 ‘게리마골’로 불리기도 한다. 국립지리원 발행 지도에는 이를 ‘계림마동’으로 표기하고 있다. 지르마골은 노루마당과 평양말 등 너른 밭이 있는 안쪽으로 올라가는 골짜기로 오래 전에는 임계 2구라고 해 1개 반이 화전 등을 하면서 살았다.
간추려 말하자면 소나 말 등에 얹는 길마와 같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서 ‘길마골’이라고 했고, 이 이름이 ‘질마골, 지르마골, 기르마골, 게리마골’을 거쳐 ‘계림마동’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지역말로 길마는 ‘지르매’라고 했다. ‘기름’이 [지름]으로, ‘길다’가 [질다]로 소리나는 것처럼 ‘길마’가 구개음화하면서 ‘질마(지르마, 지르매)’로 되는 소리바꿈은 적잖다. 이때 ‘길≒질≒지르≒게리≒계림’과 같은 대응이 되는데, 이는 소리만 다르지 같은 뜻으로 썼다는 말이다. 다만, 땅 모양이 ‘길마’를 닮았다는 설명은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눈길을 돌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사이에 있는 고개인 ‘하늘재’로 가 보자. 지금은 ‘하늘재’라고 하지만, 이 고개를 가리키는 본디 이름은 지름재, 기름재, 지릅재다.
이 고개는 고려 태종 때 새재(조령)로 길이 나면서 쓰임이 줄어들지만 신라 아달라왕(154~184)이 고구려를 칠 요량으로 열었다. ≪삼국사기≫에 보면 “아달라이사금 3년 여름 4월 계립령 길이 열렸다”고 한 기록이 있다. 이 고갯길 이름이 닭 계(鷄), 설 립(立), 고개 령(嶺) 자를 썼음을 알 수 있다. ≪대동여지도≫(1861)엔 ‘계립령’으로 쓰는데, 충주와 문경을 선으로 이어놓지 않아 조선 시대엔 고개로서 구실은 크게 줄어들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문경현 산천> 조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속된 말로 마골산(겨릅산)이라고 하는데, 방언으로 서로 비슷하다. 현의 북쪽 26리에 있고, 신라 때 옛길이다(俗號麻骨山 以方言相似也. 在縣北二十八里 乃新羅時舊路)
아달라왕 3년(156)에 고구려 장수 온달은 “계립령과 죽령의 서쪽이 우리에게 넘어오지 않으면 나도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면서 이 고개를 되찾으려고 전쟁을 벌인다. 이들을 한자로 쓴 이름이 계립령(鷄立嶺)이요 마골참(麻骨站)다. 짐작컨대 맨 먼저 이름은 ‘지름재’로 볼 수 있다. ‘지름’은 ‘지르다’의 이름씨꼴인 ‘지름’이다. 땅이름에서 ‘지름재’는 곧잘 ‘반점치(半點峙)’로 둔갑한다. 조선 시대에는 ‘점(點)’을 시간 단위로도 썼기 때문에 반점치는 거리가 줄어들어 그만큼 시간도 줄어드는 고갯길이란 뜻이다.
한편 한자로 받아적으면서 ‘지름재’를 ‘지릅재’로 엇듣고 ‘지릅’을 껍질을 벗긴 삼대인 ‘겨릅’으로 생각해서 ‘계립’이란 소리로 받아적었을 수 있다. 겨릅을 한자로는 삼 마(麻) 자, 뼈 골(骨) 자를 써서 ‘마골’이라고 했다. ‘계립마동’은 ‘겨릅’이 삼대(마골)를 뜻하는 말임을 강조할 요량으로 ‘마’를 보탰으리라. 그렇긴 해도 ‘지르마골, 길마골, 기르마골, 게르마골, 계림마동’이란 땅이름 밑바탕에 흐르는 뜻은 ‘지른다’다. 질러가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쓴 ‘지르+마을+골’이 줄어 들거나 말밑을 잘못 알고 ‘길마골, 기르마골’이나 ‘게르마골, 계림마동’처럼 둔갑하였다.
산이 많은 정선군에서는 ‘계림마동’과 같은 땅이름이 심심찮게 보인다. 산이나 물을 에돌아가자면 시간은 두말 할 것도 없고 발품을 더 들여야 하는 까닭에 질러가는 길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정선읍 덕송리에서 북평읍 남평리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이 ‘반점재’, ‘반점치’라고도 하고 ‘지르네미’라고도 하지 않나. 지르네미는 ‘지르+넘+이’가 ‘지르넘이→ 지르너미→ 지르네미’로 되었다. ‘지르메재’도 있다. 정선읍 신월리와 남면 낙동리 살피에 있는데, 이 고개를 넘으면 정선에서 남면으로 질러간다고 해서 ‘지르메재’(달리 ‘단방귀재’, ‘문두치’라고도 한다)라고 했다. 이곳 말고도 남면에 지르메골, 임계면에 지르메봉이 있다.
겨릅 껍질을 벗긴 삼대.=겨릅대.
겨릅대 껍질을 벗긴 삼대. ≒겨릅, 마개, 마골.
마개 껍질을 벗긴 삼대.=겨릅대.
마골(麻骨) 껍질을 벗긴 삼대.=겨릅대
삼대 삼의 줄기
삼 중앙아시아에서 온 식물로 보는데, 한자로는 마(麻)로 쓴다. ≪계림유사≫(1103)에 ‘마(麻)를 삼(三)이라고 한다(麻曰三)’는 말이 있고, ≪월인석보≫(1459)에 ‘삼’이라고 한 데서 보듯 이미 오래전부터 ‘삼’ 농사를 지어온 것으로 짐작한다. 씨앗을 약으로 쓰며 줄기 껍질을 벗겨 는 실을 뽑는다. 줄기에서 나오는 진에 마취 성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