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언어 톺아보기(12)
공공기관은 어느 누구보다도 말 하나 하나에 조심해야 한다. 그 말이 쉽게 퍼지고 오래도록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배달말 사전에 보면 ‘희귀’가 들어간 이름씨는 모두 넷이다.
희귀병(稀貴病) 걸리는 사람이 매우 드문 병.
희귀본(稀貴本) 드물어서 매우 진귀한 책.
희귀종(稀貴種) 드물어서 매우 진귀한 물건이나 품종.≒희종.
희귀품(稀貴品) 드물어서 특이하거나 매우 귀한 물품.
희귀본, 희귀종, 희귀품은 모두 ‘드물다’ ‘매우 귀하다’는 뜻을 공통으로 품고 있다. ‘희귀(稀貴)’는 “드물어서 특이하거나 매우 귀함”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보면 희귀병은 ‘매우 드물고 귀한 병’이 된다. 병을 앓는 것만 해도 서럽고 가슴 미어터지는데 그게 ‘귀한 병’이라는, 얼토당토한 소리를 들어야할까.
이 말을 쓰는 사람들 쪽에서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희귀질환관리법>이란 법이 있다. 법으로 ‘희귀질환’이란 말을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마음만 있다면 어떻게든 더 알맞은 말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저 법에 보면 ‘희귀질환 극복의 날’이라는 해괴한 날도 있다. 희귀한 병과 맞서 싸워 극복해야지 무릎 꿇어서야 되겠냐는 느낌이 든다. '투병'이란 말을 쉽게 한다. 배달말 사전엔 “병을 고치려고 병과 싸움.”으로 뜻매김해 놓았다. 이 말은 ‘건강한 몸’을 기본값으로 보고 ‘아픈 몸’을 병마에게 몸을 내어준, 정상에서 벗어난 몸으로 본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자연히 어째서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지 못해서 그 꼴이 났냐는 말이 감춰져있다.
말이 헛나갔지만, 우리는 매우 드물고 적다고 할 때는 ‘희소(稀少)’라는 말을 쓴다. 어금지금한 말 같아도 ‘희귀병’과 ‘희소병’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희소병/희소질환’이나 ‘난치병’이 더 알맞은 말이다. 물론 ‘희소병/희소질환’이나 ‘난치병’도 낯설고 어렵다. ‘매우 드문 병’이나 ‘치료가 매우 어려운 병’으로 풀어 쓰면 좋겠다.
말을 더 보태자면, ‘질환을 가진다’는 말도 입에 함부로 올릴 말은 아니다. 병은 가지고 싶다고 해서 가지는 무엇이 아니다. 그러면 뭐라고 해야 하나. 병에 ‘걸렸다’, 병이 ‘있다’, 병을 ‘앓는다’ 같이 말해야 한다. ‘희귀질환을 가진 유아’는 ‘희소질환이 있는 아이’나 ‘치료가 어려운 병을 앓는 아이’ 같은 말로 바꾸어 쓰려고 애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