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06)
옛말에서 ‘감’은 높고 크며 신성한 존재를 가리키던 말로 본다. 이 말은 자연히 여러 지역말과 배달말에 스며들면서 다양한 꼴로 나타나는데, ‘감, 검, 곰, 굼, 금, 고마, 구마, 가마, 개마, 거무, 고모, 거미, 구미, 구무, 거물, 거문, 거북’ 같은 말들은 모두 ‘감’이 뿌리말이라고 하겠다. 일본어 ‘가미(かみ, 신)’, ‘구마(くま, 곰)’도 ‘감’에서 가지친 말로 풀이하곤 한다. 뜻이 넓어지면서 ‘뒤쪽’, ‘구멍’을 가리키는 뜻에도 이르렀다.
이 소리를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뒤틀림은 다시 일어난다. 소리를 따서 ‘감(甘)’, ‘금(金, 錦)’, ‘검(黔)’, ‘고마(固麻)’, ‘가막(加幕)’ 따위로 적기도 했고, 뜻을 빌려 곰을 뜻하는 ‘웅(雄)’, 거북을 뜻하는 ‘귀(龜)’, 검다는 뜻하는 ‘흑(黑)’, ‘칠(漆)’, ‘현(玄)’, ‘가마(釜)’나 ‘까마귀(烏)’ 같은 한자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이처럼 ‘감’을 뿌리말로 삼는 지명 가운데 가물재와 가막재가 있다.
먼저 ‘가물재’부터 보자. <조선지형도>(1917)에는 ‘노래 가(歌)’, ‘춤출 무(舞)’, ‘고개 치(峙)’를 붙여 ‘가무치’로 적었다. 하지만 ‘노래하고 춤추는 고개’가 아니라, 본디 뜻은 ‘높은 고개’를 뜻하는 ‘감’이 소리바꿈을 하면서 ‘가무재, 가물재’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정선 여량면 지명유래≫(여량면, 2010)에서 정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 고을 원님이 궁술 시합을 마치고 구절리로 돌아가던 길에 이 고개를 바라보니, 산마루가 높고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아득하게 가물거렸다고 하여 ‘가물재’라 했다는 것이다. 고개를 넘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정신도 가물거린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명도 있다.
정선아리랑 노랫말에도 “가물재 넘어가니 가물감실한다”는 구절이 있다. 실제로 구절리에서 정선읍으로 가는 옛길을 따라가다 보면, 송천이 굽이치며 벼랑을 이룬 곳이 있어 가물재(567.4m)를 넘지 않으면 길이 이어지기 어려웠다.
한편 가막재는 정선읍 용탄리와 북평면 나전리를 잇던 고개다. 조양강을 따라가면 돌아가는 길이 생기지만, 벼랑을 따라 겨우겨우 다녀야 하는 곳도 있어 차라리 산길을 질러 고개를 넘는 편이 한결 안전하고 더 빠른 길이었을 수 있다. 그 고갯길에서 가장 높은 데라서 본디 ‘가마재’, ‘가막재’, ‘까막재’라고 했는데, 일제강점기 이후 ‘까막재’를 받아적으면서 까마귀 ‘오(烏)’, 머리 ‘두(頭)’, 고개 ‘치(峙)’ 자를 써 ‘오두치’라는 이름이 굳어졌다. 이에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두재’의 옛이름은 ‘큰 산고개’라는 뜻이다. ‘크다’라는 의미의 옛말 ‘감’과 고개를 뜻하는 ‘재’가 합해져 ‘가마재·가막재’가 되고, 이것이 ‘까막재’로 변하면서 한자 표기에서 ‘까마귀(烏)’를 빌려 ‘오두치’가 되었다.
지금은 대부분 ‘오두재’라는 표기가 굳었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예전까지 ‘가마재’, ‘까막재’라는 고개 이름을 함께 썼다. 정선에는 1000m가 넘는 산과 고개가 흔하지만, 해발고도를 나타내는 숫자가 아니라 ‘길을 오가던 옛사람이 몸소 느낀 높이’가 땅이름에 담긴 진실이다. 이들에게 이 고개는 분명히 ‘높은 재’였다.
감다 석탄 빛처럼 조금 밝고 짙다.
검다 숯빛이나 먹빛처럼 어둡고 짙다.
가마솥 아주 크고 우묵한 솥. ‘가마’라고도 한다.
가마우지 옛말은 ‘가마오디’다. 몸은 검은데 등과 죽지에 푸른 자주빛 윤기가 난다. 부리가 길고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어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 텃새로, 우리나라와 일본에 산다.
까마귀 옛말은 ‘가마괴’다. 윤기가 나는 검은 빛깔을 띠는데, 부리가 굵고 날카롭다.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고 알 너댓 개를 낳는다. 아무것이나 잘 먹는다.
가물치 옛말은 ‘가모티’다. 가물칫과의 민물고기. 숭어와 비슷한데 몸의 길이는 60cm 정도이며, 등 쪽은 어두운 갈색, 배는 잿빛 흰색이다. 옆구리에 검은 갈색의 얼룩무늬가 있으며 입은 크고 눈은 작다. 식용하거나 산모(産母)의 보혈 약 따위로 쓴다. 한국, 일본, 아시아 동남부에 널리 분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