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재의 흔적(2): ‘오두치’ 주인공은 까마귀가 아니다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07)

by 이무완
정선_오두치.jpg 정선군 정선읍 용탄리 ‘오두치’(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1917)

정선읍 용탄리에도 ‘오두치’가 있고, 임계면 둔전리에도 ‘오두치’가 있다. 국립지리정보원의 <지명사전>을 찾아보면 ‘오두치’가 두 곳, ‘오두재’가 열세 곳이나 된다. 이곳들은 모두 까마귀 오(烏), 머리 두(頭) 자를 써서 ‘오두치’, ‘오두재’라 한다.


원래 고개 이름은 대개 ‘가마재’나 ‘가막재’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땅이름을 한자로 옮기면서 ‘가막’을 ‘까마귀 오(烏)’로, ‘재’를 ‘치(峙)’로 바꾸어 ‘오두치’라는 표기가 굳어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가막재 → 오치(烏峙)’로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하는데, 땅이름에 느닷없이 ‘머리 두(頭)’가 들어와 있다. 더욱이 땅이름을 한자로 옮길 때에는 내남없이 좋은 뜻을 골라 쓰려는 경향이 있는데, ‘까마귀머리고개’라는 뜻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 279쪽)의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오두재의 옛 이름은 ‘큰 산고개’라는 뜻이다. ‘크다’는 뜻의 옛말 ‘’과 고개를 뜻하는 ‘재’가 합쳐 ‘가마재’, ‘가막재’가 되었고, 이 말이 변하여 ‘까막재’가 되었다. 이 ‘까막’을 한자로 옮기면서 ‘오(烏)’를 쓰게 되었으며, 예전에는 용탄이나 나전 사람들은 ‘가마재’, ‘까막재’라고 했으나 지금은 대부분 ‘오두재’라고 부른다.

오두치.jpg 정선군 임계면 둔전리 '오두치'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1917)

이 설명대로라면 ‘재 → 가마재 → 가막재 → 까막재 → 오치(烏峙)’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오’와 ‘치’ 사이에 ‘두(頭)’가 들어간 까닭은 설명하지 못한다.

여기서 ‘’이라는 말의 뿌리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은 ‘크다, 높다, 신성하다’는 뜻을 품은 토박이말로, 우리 땅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겼다. 감, 곰, 금, 김, 굼, 가마, 고마, 구마, 구미, 가물 따위로 소리 바뀌고, 이를 한자로 적을 때는 감(甘), 검(劍, 劒, 黔), 금(金, 錦, 琴), 감물(甘勿), 고마(固麻), 고막(古莫), 가막(加莫, 駕幕), 감악(紺岳), 거문(巨文, 巨門), 개마(蓋麻)처럼 둔갑하여 나타난다. 한자 뜻과는 아무 관계 없이 소리만 빌려 적은 까닭에 언뜻 보아서는 말밑을 얼른 알아채기 어렵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웅(熊), 귀(龜), 흑(黑), 칠(漆), 현(玄), 부(釜), 탄(炭), 검(黔)처럼 소리가 아닌 뜻 빌려적기에 이르면 더욱 복잡해져서 머리 아파진다.


그래서 말이지만 ‘오두치’의 말밑도 ‘재’에서 말미암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본래 형태는 ‘감말재’였을 가능성이 크다. 아래아(•)는 [아], [어], [오]로 흔히 바뀌기 때문에 ‘감말재 → 가막말재/가막멀재 → 가막재 → 오두치 → 오두재’라는 바뀌는 과정이 자연스럽다. 여기서 ‘(말/멀/마루)’은 ‘고갯마루·산마루·용마루’에서 보듯 ‘맨 꼭대기’를 뜻한다. ‘’이 ‘몰/말’로 되고, 그 자리에 ‘머리’를 뜻하는 ‘두(頭)’가 대응하여 남은 셈이다.

따라서 ‘오두치(烏頭峙)’는 ‘감말재(큰 마루의 고개)’가 한자식으로 바뀌면서 생겨난 이름으로 볼 수 있다. ‘가(가막)’은 소리만 따서 ‘오(烏)’로, ‘(마루)’은 뜻을 살려 ‘두(頭)’로, ‘재’는 ‘치(峙)’로 옮겨졌다.

행정에서 쓰는 땅이름이 ‘오두치’로 되었으나, 고개를 넘나들던 사람들에게 ‘치’보다는 ‘재’가 더 고갯길다운 말이어서, 자연스럽게 ‘오두재’라는 이름이 더 널리 쓴 듯하다.


배달말 한입 더

까마귀는 ≪훈몽자회≫(1527)에 “烏 가마괴 오, 鴉 가마괴 아, 鸒 가마괴 여, 斯+鳥 가마괴 ”로 나온다. ‘가마괴’는 ‘검다’의 옛말인 ‘감다’의 ‘감-’과 새를 뜻하는 ‘괴’를 붙여 만든 말로 본다. ‘괴’는 ‘고이’의 준말로, 본디 ‘고리’가 소리바꿈한 말이다. 꾀꼬리(<곳고리), 직박구리, 딱따구리, 왜가리에서 보듯 ‘고리, 구리, 가리’는 새를 뜻한다. ‘감고리→ 감고이→가마고이→가마괴→까마귀’처럼 되었으리라. 더러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린 ‘삼족오’나 ≪삼국유사≫(1281)에 나오는 ‘연오랑 세오녀’의 이름에 든 까마귀 오(烏) 자를 들어 ‘감’이 다름 아닌 ‘크고, 높고, 신성한’ 뜻이 있는 ‘’으로 보기도 한다. ‘+고리’ 꼴이니, 이때는 ‘신성한 새’로 볼 수 있다.

한편 갈까마귀는 까마귀들 가운데 몸집이 작기 때문에 ‘잘다, 작다’는 뜻이 있는 앞가지 ‘갈-’이 붙었다.


[일러두기] ’이나 ‘’처럼 굵고 붉은 글씨로 쓴 글자는 아래아(•)를 홀소리로 쓴 글자다.

작가의 이전글곰재의 흔적(1) 가물재와 가막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