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은 정말 개미 때문에 생겨난 이름일까?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08)

by 이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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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군 남면 낙동리에 ‘개미들’ 마을이 있다. ≪정선 남면 지명유래≫(남면, 2011)는 다음과 같이 이 마을을 소개한다. 조금 길지만 그대로 옮겨본다.


갬들[蟻坪] 선들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지금은 새농촌 사업을 하면서 본래의 갬들마을뿐만 아니라 샘들마을이 끝나는 곳부터 뒷내 지역까지 낙동 2리 지역 모두를 어우러 ‘개미들’이라는 지명을 쓰고 있으나 본래의 갬들은 학바우 일대를 말한다. 1830년 전후에 펴낸 ≪관동지≫와 강원도의 각 읍지를 집성해 고종 8년(1871년)에 편찬한 ≪관동읍지≫, 무자년(1888년)에 기록된 ≪정선총쇄록≫에 실린 지도에도 ‘蟻坪(의평)’으로 나와 있다. 그 후 ‘의평’은 ‘갬들’로 불렸고 지금은 ‘개미들’이라고 한다. ‘개미들’에는 조선시대 지명에 얽힌 전설이 있다. 조선시대 광해군 말기에 한림학자인 동은 신일민(辛逸民)이 관직을 사임하고 낙동리에 은거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난데없이 무수히 많은 개미가 모여들어 이곳저곳 어디에도 앉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신일민은 ‘녹음방안도의평(綠陰芳岸都蟻坪)’이라고 즉석에서 시 한 수를 지어 읊자 개미떼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때부터 이곳을 ‘蟻坪’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197~198쪽)


≪관동읍지≫는 1871년 강원도 여러 읍지들을 7책으로 모아 엮은 책이며, ≪정선총쇄록≫은 정선군수 오횡묵이 1887년 3월부터 1888년 8월까지 일기 형식으로 쓴 기록이다. 이 ‘지명 유래’를 따르면 ‘의평 → 갬들 → 개미들’로 바뀌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긴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땅의 임자는 그 땅에 엎드려 일하던 백성들인데 어느날 방귀깨나 뀐다는 사람이 말놀이하면서 지어낸 땅이름을 그대로 쓸 리 없다. 오히려 ‘개미들’이라는 배달말이 있고 이 말이 ‘갬들’로 줄어든 뒤, 이를 개미 의(蟻), 들 평(坪) 자로 옮겨 ‘의평’이 되었다고 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고 매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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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이름을 보면 ‘개미’와 얽힌 곳이 적지 않다. 개미목, 개미등, 개미머리, 개미재, 개미실, 생개미들 따위가 있는데, 하나같이 ‘땅 모양이 개미를 닮아서’, ‘개미처럼 부지런한 사람들이 살아서’, ‘사람들이 개미처럼 모여들어 마을을 이뤄서’ 같은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땅이름을 본격으로 살피기에 앞서 ‘개미’란 말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말인지 보자. 말밑이 또렷하지 않지만 배달말 사전들에선 ‘개미’는 ≪석보상절≫(1446)에 나오는 ‘개야미’, ≪월인천강지곡≫(1449)에 나오는 ‘가야미’에서 말미암았다고 한다. 80여 년쯤 뒤에 나온 ≪훈몽자회≫(1527)에도 ‘蟻 가야미 의’로 나타난다.

개야미, 가야미가 도대체 뭘까. 우리말에 검은빛을 가리키는 ‘감다’라는 말이 있다. 석탄빛처럼 짙으면서도 약간 밝은 색을 가리킨다. 내 생각으로는 ‘개미’가 ‘감다’의 말줄기 ‘감-’에 이름씨 뒷가지인 ‘-이’를 붙여 지어낸 말이 아닐까 싶다. ‘감+이’가 [가아미]·[가야미]로 소리가 바뀌고, ‘아기’가 ‘애기’로 바뀌듯 ‘개아미’로 되었고, 다시 ‘개미’로 줄어든 흐름도 생각해봄직하다. 그렇게 보면 ‘개미’는 ‘검은빛을 띠는 벌레’로 된다.


이렇게 보면 ‘개미들’에서 한자 ‘蟻(의)’를 쓴 데는 뜻소리에 끌려 나중에 붙인 글자일 뿐, 말밑은 ‘크다·높다·신(神)’라는 뜻이 있는 ‘’(아래아(•)를 쓴)과 관련지어 볼 수도 있다. ‘’은 땅이름에서 ‘감, 검, 금, 가마, 가매, 고마, 가미, 가무, 개마, 개매’ 같은 다양한 꼴로 나타난다. 이렇게 보면 ‘개미’는 ‘’에 뜻과 상관없는 ‘ㅣ’를 보탠 ‘이’, 다시 ‘가미 → 개미’로 바뀐 말로 볼 수 있다. 자연히 ‘개미재·개미실·개미들’도 ‘개미처럼 작다’가 아니라 ‘크고 높고 넓다’는 뜻에서 생겨난 땅이름이 된다.


충남 보령시 청라면에도 ‘의평리’가 있는데, 한자로 개미 의(蟻), 들 평(坪)을 써서 ‘의평’이라 하며, 배달말로는 ‘개미벌·갬벌’이라 한다. <디지털보령문화대전>에는 고려 때 왜구를 쳐들어오자 김성우가 나아가 무찌르는데 이때 주검이 개미처럼 쌓여 있어 ‘의평’이라고 했다는 전설을 소개한다. 개밋둑에 흙자루가 쌓인 모습에서 생겨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개미벌’은 ‘크고 너른 벌’에서 비롯한 이름으로 보는 쪽이 설득력이 있다.

정선 낙동리에 있는 개미들은 약 2만 1천 평 남짓으로 축구장(약 2,160평) 열 배 정도로 그다지 넓은 들은 아니다. 하지만 정선군으로 보면 펀펀하고 너른 땅이 드문 산골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충분히 ‘크고 너른 들’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곳이다.


배달말 한입 더

감은색(감은色) 석탄의 빛깔과 같이 다소 밝고 짙은 색.

검은색(검은色) 숯이나 먹의 빛깔과 같이 어둡고 짙은 색

먹색(먹色) 먹물의 빛깔과 같은 검은색

감색(감色) 잘 익은 감의 빛깔과 같은 진한 주황색.

감색(紺色) 짙은 청색에 적색 빛깔이 풍기는 색.

낙낙하다 크기, 수효, 부피 따위가 조금 크거나 남음이 있다.

넉넉하다 크기나 수량 따위가 기준에 차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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