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무내’가 ‘혈천’을 거쳐 ‘설내’로 흐르다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09)

by 이무완

정선군 임계면 낙천리에는 노인봉 남쪽을 휘감아 흐르는 골지천 안쪽에 ‘설내’라는 마을이 있다. 귀로만 들으면 무슨 뜻으로 지은 이름인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한자 이름은 피 혈(血)로 엇듣고 ‘핏빛’, ‘핏물’, ‘붉은 빛’을 떠올리지만, ‘피 혈(血)’이 아니라 ‘구멍 혈(穴)’을 쓴 ‘혈천(穴川)’이다.

땅이름은 농사 짓는 사람들 입말이 뿌리가 되고 줄기가 되었을 터다. 아마도 ‘구무내’를 글깨나 읽은 양반들이 한자로 받아적으면서 ‘혈천(穴川)’으로 둔갑하지 않았나 싶다. 백성들이야 ‘혈천’으로는 얼른 떠오르지 않으니 어정쩡하긴 해도 냇줄기가 드러나는 ‘셜내’로 소리냈으리라.

혈천리.jpg 지도출처: 조선지형도, 1917

땅 모양새를 보면 골지천이 남쪽에서 흘러와 북동쪽으로 크게 휘감고 남서쪽으로 빠져 나가면서 절벽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보기에 따라 굼처럼 보이기도 하고 혓바닥 같이도 보인다. ≪정선 임계면 지명유래≫(임계면, 2011, 22쪽)를 보면 마을 이름 유래를 이렇게 말한다.


마을 서쪽 당고개 아래쪽에 있는 많은 양의 물이 솟아나오는 굴이 있어 ‘혈천(穴川)’이라고 했는데 우리말로는 ‘설내’라고 했다. 1911년 발행된 ≪조선지지자료≫에도 한자로는 ‘穴川’, 우리말로는 ‘셜’로 나와 있다. ‘ㅎ’을 ‘ㅅ’으로 소리내는 정선 사투리에서 자주 눈에 띈다.


설명에서 보듯 [ㅎ]을 [ㅅ]으로 소리나는 일은 지역말에선 매우 흔하다. 실제로 ‘형님’을 ‘성님’, ‘혓바닥’을 ‘셋바닥’이라고들 한다. 우리 땅 서쪽에 있는 강화도를 가리키는 옛 이름이 혈구군(穴口郡)이다. ≪고려사≫(권56, 1452)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강화현(江華縣)은 본래 고구려 혈구군(穴口郡, 갑비고차(甲比古次)라고도 한다.)으로 바다 가운데 있으며, 정주(貞州)의 바로 서남쪽에, 통진현 서쪽에 있다. 신라 경덕왕 때 해구군(海口郡)으로 고쳤으며 고려(高麗) 초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혈구군/갑비고차→ 해구군→ 강화현→ 강화도’처럼 땅이름이 바뀌어왔다는 말이다. ‘고차’는 바다로 밀고 나간 땅덩이를 가리키는 ‘곶’을 말하는 동시에 우묵하게 뭍으로 밀려 들어간 ‘굼’을 뜻하기도 한다. ‘구멍’을 옛말에선 ‘굼ㄱ, 구무’라고 했고, 지역말로는 ‘굼기, 궁기, 구녕, 구영’이라고 한다. 가끔 ‘굼/구미’로 써서 구석진 작은 골짜기를 말하기도 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자신이 터잡고 살던 마을과 산과 들과 내와 골에 이름을 지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깨끗한 우리말 이름이다. 그런데 중국을 큰나라로 섬기던 양반들이 한자를 끌어다 이름을 지어 붙이는데, 본디 우리말 뜻이 나타나지 않는 어설픈 한자 소리로 된 땅이름으로 바뀐다. ‘설내’란 이름엔 땅을 모르는 양반과 땅에 엎드려 살던 백성들 사이에 벌어진 이름 전쟁이 아로새겨져 있다.


요컨대 ‘마을 서쪽 당고개 아래쪽에 있는 많은 양의 물이 솟아나오는 굴’에서 말미암은 내라고 해서 ‘구무내/굼내’라고 했는데 우리말 소리 느낌은 생각하지 않고 한자로 받아적기하면서 ‘혈천(穴川)’으로 둔갑시켜 놓지만 땅에 엎드려 살던 백성들은 ‘혈천’과 ‘구무내’를 섞어 ‘혈내’라고 했으리라. 하지만 그마저도 마뜩찮자 ‘혀(舌)’를 ‘세’로 소리내는 지역말 버릇대로 ‘셜’로 바꾸었고 이 이름이 지금까지 이어져 ‘설내’로 굳어졌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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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처럼 붉고 굵은 글씨는 아래아(•)를 홀소리로 쓴 글자이며, 위 사진은 픽사베이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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