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피: 땅이름은 어떻게 오해를 낳는가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10)

by 이무완

‘젊은 피’는 기운이 넘치는 청년을 빗대어 가리키는 표현이다. 거기에 견줘 ‘늙은 피’라는 말은 쓰는 일이 없고, ‘늙다리’ 같은 말이 있지만 낮잡는 말이니 함부로 입에 올릴 말은 아니다. 그런데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 구룡골 북서쪽에 ‘늙은피’ 마을이 있다. 한자로 쓴 땅이름은 늙을 노(老), 피 직(稷) 자를 써서 ‘노직동(老稷洞)’이다.


임계면사무소에서 낸 ≪정선 임계면 지명유래≫(2011, 115쪽)를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늙은피’는 ‘산자락이 넓거나 늘어진 고개 안쪽’을 뜻하는 옛말인 ‘넉안’과 ‘비탈’을 뜻하는 ‘’에서 나온 말로 이 말이 ‘느근피’로 변했고, 이를 한자로 쓰면서 ‘느근’을 ‘늙을 老’로, ‘피’를 식물인 피로 보고 ‘피 稷’을 써서 ‘老稷洞’이라고 했다.


≪정선 임계면 지명유래≫는 늘어진 고개 안에 있는 비탈로 보았다. <조선지형도>를 살펴보면, 북동쪽에 있는 형제봉(679.1m)과 그 주변에 843.9미터, 836.2미터. 760.9미터에 이르는 봉우리들이 동남쪽을 둘러 막힌 골짜기를 ‘구룡골’이라고 했고, 그 북서쪽 형제봉 쪽으로 비탈이 느릿한 곳을 ‘늙은피’라고 했다.

늙은피(조선지형도).png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1917

그러나 말밑으로 톺아보자면 ‘넉안’과 ‘피’를 붙여 생겨난 ‘넉안피’에서 ‘느근피’로 바뀌었다는 설명은 소리 바꿈으로 볼 때 매끄럽지 않다. 이에 정선 지역말인 ‘늘긴다’를 끌어와도 좋겠다. 이를 바탕으로 한다면, ‘늘어진 산줄기’라는 뜻의 ‘늘긴 비탈’ → ‘늘긴피’가 먼저 있고, 뒤로 ‘늘긴/늘근’과 ‘늙은’이 어금지금한 소리 탓에 오해가 빚어지면서 ‘늙은피’로 굳었을 수 있다. 나아가 ‘늙다’란 말은 사람뿐 아니라 곡식이나 풀이 지나치게 자라 숙어지는 상태도 가리키므로, 늙을 노(老)와 곡식 피(稷)를 함께 적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토박이들에게는 ‘늘근피’든 ‘노직동’이든 ‘느릿한 비탈에 있는 마을’을 떠올리겠지만, 귀로만 들으면 ‘늙은 피’라는 생뚱맞은 뜻풀이가 저도 모르게 떠오를 수 있다. 이처럼 땅이름은 소리와 뜻과 글자라는 세 가지가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바뀌는지를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보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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