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11)
정선읍 어천 북쪽에 ‘구미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를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마을 생김새가 거북의 꼬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구미동(龜尾洞)’이라 부르던 것이 일제강점기에 ‘구미동(九尾洞)’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조양강 물줄기가 옆으로 감싸돌며 한쪽이 굼이 진 곳에 위치해 ‘구미’라 했다고도 한다. 하천의 후미진 곳을 가리키는 ‘구미’가 ‘구미동’으로 변했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본래 어원인 ‘굼’과는 관계없는 ‘龜尾洞(구미동)’, ‘九尾洞(구미동)’으로 쓰이기 시작했다.(150쪽, 굵은 글씨는 강조할 요량으로 글쓴이가 함.)
이 설명처럼 조양강이 굽이져 흐르며 물살이 느려지는 후미진 데라서 ‘굼’이라 했고, 이를 한자로 뒤치는 과정에서 ‘구미(龜尾)’, ‘구미(九尾)’로 바뀐 듯하다.
‘굼’은 배달말 사전에선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옛말 ‘구무’, ‘굼ㄱ(穴)’과 관련한 말이며 지역말에선 구멍, 굴, 우묵하게 꺼진 땅, 구석진 골짜기를 가리키는 말로 여전히 살아있다. 더욱이 ‘굼’에서 ‘ㄱ’이 탈락하면 ‘움’이 되는데, ‘움’은 새싹이 돋는 자리이기도 하고, 땅을 파서 ‘굼’채소를 넣어 두는 곳을 가리킨다. ‘움집’은 바로 그 움을 파서 지은 집이다. 이렇게 보면 ‘굼’과 ‘구미’에 좋은 뜻을 담아 끌어온 한자가 바로 ‘거북 구(龜)’이다.
거북을 쓴 땅이름은 예부터 곳곳에 보인다. 당장에 ≪삼국유사≫(1281) <가락국기>에 나오는 ‘구지봉’ 이야기도 그 하나다. 경남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에서 옛 사람들은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먹으리 ”라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새 임금을 기다렸고, 이는 곧 여섯 가야로 이어졌다. 또 <수로부인전> ‘해가’에도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부녀를 빼앗아 간 죄가 얼마나 큰가/ 네가 만약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라’ 하고 ‘거북’이 나온다.
그만큼 옛사람들이 거북을 친근하면서도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겼다는 반증 아니겠나. 거북은 용, 봉황, 기린과 더불어 영물이라 여겼고, 십장생 가운데 하나이자 물의 신(神)이었다. 중국 ≪열자≫에는 거북이 땅을 떠받치고 봉래산을 등에 지고 있다는 전설도 실려 있다. 이러한 상서로운 동물인 거북이 풍수 사상과 이어지면서 거북바위(구암, 구석), 거북산(구산), 구미(龜尾), 구포(龜浦), 구천(龜川) 같은 땅이름을 낳았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거북 구(龜)’ 자가 ‘아홉 구(九)’ 자로 바뀐 데가 많다. 떠도는 말로는 일제가 민족의 상징성을 지울 요량으로 벌인 짓거리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왜군을 벌벌 떨게 한 ‘거북선’을 떠올리게 하는 글자라서 일부러 다른 한자로 바꿔치기했다는 해석이다. 물론 찬찬히 톺아보아야 하겠지만 땅이름은 단순히 글자로 받아적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 정서와 믿음과도 이어짐을 잘 보여주는 보기라고 하겠다.
거북의 옛말은 “수미산 아래 바랈 가운데 한 눈 가진 거붑과 한 구무 가진 남기 잇나니.”(석보상절, 1446)라는 대목에서 보듯 ‘거붑’이다. ≪훈몽자회≫(1527)에도 “龜 거붑 귀”로 나온다. 끝소리 ‘붑’에서 ‘ㅂ’ 소리가 연거푸 나는 까닭에 ‘거북’으로 되었으리라.
가끔 한자 귀복(龜卜)에서 왔다는 해석도 있지만,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도 이 땅에 거북 신앙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썩 믿을 만한 말은 아니다.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바다에 뜬 섬을 거북이 등으로 여겼고, 동해 한가운데엔 신선이 사는 삼신산(三神山)이라는 데가 있어서 거북이 아홉 마리가 등으로 떠받친다고 생각했다. 또 상서로운 조짐을 나타내는 동물로 상상의 동물인 용, 기린, 봉황과 함께 실제 동물인 거북을 들었다. 그만큼 신령스런 동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지가(龜旨歌)’에서 거북은 신성한 임금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백성들 뜻을 신에게 전하는 구실을 하는 존재다. 오히려 ‘높고 크고 신성스런’ 존재를 뜻하는 옛말 ‘감’을 말밑으로 볼 때 오히려 ‘임금’과 뜻이 더 잘 통한다. ‘감→가무→거무→거뭄→거붑’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말난 김에 ‘거북’과 ‘거북이’ 가운데 어느 말이 표준어일까. 둘 다 표준어다. 사전엔 ‘거북이’를 “‘거북’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