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05)
강릉시 대전동에 ‘즈므/즈무’라는 마을이 있다. 길섶에 선 '즈므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볼 때마다 ‘즈므’의 말밑이 궁금했다. 떠도는 말처럼 천(1000)을 가리키는 옛말 ‘즈믄’에서 온 말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설명이 너무 성글어 생뚱맞고 뜬금없다. ≪디지털강릉문화대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즈무[助山]는 경포의 중심지인 날밀이나 뒷뜨루 지역에서 보면 이곳이 해가 지는 서쪽이 되어, ‘해가 저무는 서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인 ‘저무 마을’로 부르다가 나중에 줄어서 ‘저무’로 되었다가 모음 ‘ㅓ’가 모음 ‘ㅡ’로 되어, ‘즈무’로 되었다.
나 같은 둔재는 도리어 안갯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러던 참에(국립무형유산원, 2018)에서 ‘운정동 고봉제’를 설명한 대목을 봤다. 한 부분을 들어본다.
강릉시 운정동에서 행해지는 서낭제사로, 제의 명칭은 고봉제 또는 대동제이다. (가운데 줄임) 운정동 고봉제의 공간이 되는 곳은 조산(造山)이다. 조산은 즈므마을에 있는 산으로, 된봉이라고도 한다. 조산인 된봉은 난곡동의 서지마을, 행정마을, 날밀마을, 배다리마을, 해운정마을, 시리미마을의 안산이며, 신당이 이곳에 있다. 성황당에는 당집이 없으며, 서낭목 주위에 석축을 쌓아 제단을 만들었다.(531쪽)
놀랍게도 이 설명을 읽으면서 마음이 환해졌다. 운정동에서 지내는 서낭제인 고봉제를 즈므마을 된봉(116.9m)에서 지냈는데, ‘고봉(高峰)'이 ‘된봉’이자 곧 ‘조산’이라는 말이다. 일부러 쌓아 지어낸 봉우리는 아니지만 신당 구실을 하니 ‘조산’이 된 셈이다. 이쯤에서 어라, 멀쩡한 산을 어째서 조산이라고 했냐는 물음이 누구라도 있을 수 있겠다.
<잉글리쉬맨>이라는 영화가 있다. 1917년 영국 웨일즈 남부 지방 어느 마을이 배경인데, 피농가루라는 언덕(hill)을 ‘산(mountain)’으로 인정받으려는 마을 주민들 이야기다. 잘 알다시피 영국은 낮고 펀펀한 들판이라서 마을 사람들에게 ‘피농가루’는 마을을 상징하는 푯대와 같은데 ‘산’이 아니라서 지도에서 사라질 판이니 그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산으로 인정 받자면 높이가 약 1000피트(약 305미터)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피농가루는 1000피트에서 16피트(약 6미터)가 모자랐다. 측량기사가 산 높이를 재려고 온다고 하자 주민들은 회의를 열고 흙을 두두룩히 쌓아 기어코 산으로 만든다.
우리는 영국처럼 산은 몇 미터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기준이 아예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땅의 부분”이라고 뜻매김하지만 우리 정서로는 이름 붙이기 나름이다. 더욱이 우리 땅 어디서고 눈길 닿는 곳마다 산 아닌 데가 있기나 할까. 그런데 그마저도 모자란다 여겨 우리 조상들은 일부러 산을 짓기도 하고 바다에 뜬 섬도 해산(海山)이라고 했다. 부러 가꾼 숲이나 논밭을 일구다 골라낸 돌로 쌓은 돌탑이나 나무를 깎아 세운 솟대, 장승, 심지어 남근석을 세우고 그곳을 ‘조산’이라고 했다. 에잇, 그게 무슨 산이냐 하겠지만 풍수에서는 평지에서 한 자만 높아도 산으로 치기 때문이다. 때로는 옛 무덤이나 멀쩡한 산을 슬그머니 조산으로 삼는 일도 허다했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즈므와 조산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자. 조산을 배달말로 바꾸면 ‘지은 뫼’가 된다. ‘지은 뫼’가 줄어들면 ‘진뫼’나 ‘즌뫼’처럼 소리나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즈므’나 ‘즈무’로도 얼마든지 소리 바꿈할 수 있지 않을까. 잘 알다시피 조산이 있는 마을을 흔히 ‘조산리’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즈므/즈무’는 조산을 뜻하는 ‘지은 뫼/지은 메’가 말밑이 아닐까 싶다.
#즈므 #즈무 #지은뫼 #조산 #강릉 #땅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