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04)
정선읍에서 북쪽 반점재(지르네미재)로 오르는 길 왼쪽 산기슭에 ‘납덕’이란 마을이 있다. 납닥골, 납덕동이라고도 한다. 말 느낌으로 보면 ‘납닥골’이나 ‘납덕동’은 땅이 ‘납닥한 골’이라서 붙은 이름 같다. 더구나 지역말에 ‘납닥하다·넙덕하다’와 같은 말이 있다. 이는 표준어 ‘납작하다·넓적하다’와 의미상 대응한다.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 122쪽)를 보면 덕송리에 ‘납닥골’을 올림말로 해서 다음과 같이 말해놓았다.
정선읍에서 적거리를 지나 반점재 쪽으로 가다가 왼쪽에 있는 마을이다. 비봉산과 방아재 계곡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 넓은 산골 마을이라고 해서 ‘납닥골’이라고 했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서 ‘납덕(納德)’, ‘납덕동(納德洞)’이라고 했다. ‘납’은 ‘넓다’는 뜻이며, ‘닥’은 ‘산(山)’의 옛말인 ‘닫’이 변한 말이다.
골짜기가 동남쪽으로 느릿하게 내려서고 조양강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납닥골’이 있다. 땅 모양새를 보면 마을은 비봉산(828m)과 방아재 사이에 부채꼴 모양으로 골이 느른하게 비탈진 곳에 있다. ≪정선읍 지명 유래≫에서는 ‘넓다’의 말줄기 ‘넓-’과 산을 가리키는 옛말 ‘다ᆞ갇’을 뿌리말로 보고 ‘넙(넓)+닫’이 ‘넙닫→ 넙닥→ 납닥→ 납덕(納德)’으로 바뀌어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납덕’에서 ‘납’은 ‘넓-’이나 ‘너르-’에서 온 말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오늘날 <표준발음법>으로는 ‘넓다’를 [널따]로 소리내지만, 지역말에서는 지금도 [넙다]처럼 소리낸다. 또 [넙]이 [납]이나 [놉] 따위로 홀소리 바꿈은 흔하게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하면 ‘너르-/넓-’가 말밑으로 볼 여지는 충분하다. 한편으로 땅 모양 특성으로 보면 ‘늘어진 둔덕’을 뜻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땅이름에서 ‘늘-’붙이는 ‘느르, 너르, 널, 눌, 놀’ 같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일은 매우 흔하다.
그렇지만 ‘덕’은 산을 뜻하는 말인 ‘닫’이 ‘닫, 닥, 덕’으로 바뀌어 온 말이 아니라 애초 ‘덕’에서 말미암은 말이 아닐까 싶다. 옛 땅이름에서 ‘덕’은 ‘둔덕, 언덕’에서 보듯 둘레보다 높고 펀펀한 땅을 말한다.
비슷한 땅이름으로 정선읍 회동리에 ‘넙덕골’이 있다. ≪정선읍 지명유래≫(244쪽)에서 “아홉사리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골짜기 안이 넓은 둔덕을 이룬 곳이라고 해서 ‘넙덕골’이라고 한다.”고 설명해 놓았다. ‘납덕’과 ‘넙덕’은 홀소리 차이만 있을 뿐 거의 같은 말 아닌가. 청옥산(1255.7m)에서 육백마지기를 지나 1180봉과 못골(지동)로 흘러온 산줄기와 굇대봉(844m, 아홉사리골 동쪽) 사이에 골짜기에 있는, 펀펀한 골이다. 땅 모양새로 보면 ‘넙덕골’이라는 이름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어째서 '납덕'이나 '넙덕'이라는 원래 뜻이 흐리터분해졌는가 하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은 어떤 곳을 다른 곳과 구별할 요량으로 그 땅의 남다른 특성을 밑거름 삼아 자신이 아는 무엇에 빗대어 이름을 붙인다. 사람은 자기 둘레에 있는 오만 것에 이름을 붙이는 존재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해서 생겨난 땅이름은 시간이 흐르면서 말밑이 흐리터분해지고 거기에 살아가는 사람들 생각이나 바람 따위가 새롭게 보태지면서 소리 바꿈이나 뜻 바꿈이 시나브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홉사리골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 243쪽)에 보면 “‘아홉사리골’은 골짜기가 굽어져 구불구불 사려있는 모양으로 ‘사리’는 고개나 골짜기가 굽이굽이 나 있는 곳”으로 풀어놨다. 이때 ‘사리’는 움직씨 ‘사리다’에서 온 이름씨다. 국수나 새끼, 줄 따위를 동그랗게 포개어 감거나 뱀 따위가 몸을 동그랗게 감을 때 ‘사리다’라 말하고, 동그랗게 포개어 남은 뭉치를 ‘사리’라고 한다. 땅이름에서 ‘사리’는 굽어 돌아간 땅을 말하는데 ‘아홉’은 굽이가 매우 잦다는 뜻이다. 우리 정서로 아홉은 많다는 뜻을 상징한다. 곧, 아홉사리골은 ‘아홉사리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겠다. 잘 알다시피 정선 땅은 고개와 골짜기가 많고 첩첩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이다.
도투골 반점재(지르네미재)에서 서쪽으로 작은 골짜기를 말한다. ‘산’을 가리키는 옛말인 ‘닫’과 마을(골짜기)를 뜻하는 ‘골’이 붙어 생겨난 땅이름이다. ‘닫+의(으)+골’ 짜임인데, 이 말이 ‘돋으골’을 거쳐 ‘도투골’로 바뀌지 않았나 짐작해 볼 수 있다. ‘도투골’은 ‘산에 있는 마을’ 쯤으로 뒤쳐 생각해봄직하다.
[일러두기] 이 글에서 ‘닫’처럼 붉고 굵게 나타낸 글자는 아래아(•)를 홀소리로 쓴 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