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밭’이 부른 이름, ‘어라전’에서 ‘명주내’까지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14)

by 이무완

명주내, 이름이 참 곱다. 우리 말에 ‘명지바람’이 있다. 보드랍고 맑고 따뜻한 바람을 가리켜 ‘명주바람’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명주’는 누에고치에서 켠 실로 짠, 무늬 없는 비단을 말한다. 가볍고 맑고 보드라운 명주와 같은 바람이라서 붙인 이름일 게다.


그렇다면 ‘명주내’는 어떻게 생겨난 땅이름일까.


명주내(明紬川)는 북평면사무소 서남쪽 마을로 나전리 중심 마을로 ‘본동’이라고도 한다. 북쪽에서 흘러온 오대천과 동쪽 아우라지에서 흘러온 조양강이 만나는 곳이다. ≪정선 북평면 지명유래≫(북평면, 2007, 141쪽)를 보면 “옛날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끝없이 들어갈 만큼 물이 깊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말해놓았다. 명주내를 ‘어라전, 어래전, 어래, 나전’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지지자료≫(1911)엔 “於羅田(어라전) 명지”로 나온다.

명지내.jpg 지도출처: 조선지형도, 1917

명주내, 어라전, 어래전, 어래, 나전……. 이들 이름 가운데 맨 앞자리에는 어느 것을 놓아야 할까.


땅 모양새로 볼 때, 이 마을을 가리키는 말은 ‘늘밭’으로 볼 수 있다. ‘늘’은 ‘늘어지다, 느릿하다’에서 왔다. 오늘날 ‘어(於)’ 자를 어조사 어로 새기지만 향가나 이두 같은 옛말에서는 [늘] 소리로 많이 썼다. 늘밭을 어전(於田)이라고 했고, 느릅나무를 ‘於乙邑(어을읍)’으로 적기도 했다. 또 ≪관동지≫(1829–1831)와 ≪관동읍지≫(1871)에 강원도 화천군 간척면 어읍3리(於邑3里)가 유읍3리 (楡邑3里)를 거쳐 유촌리(楡村里)로 바뀌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어을읍’과 ‘어읍’은 ‘느릅/늘읍’으로 읽을 수 있다. ‘늘밭’은 ‘늘앗, 느랏’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앗’은 ‘밭’의 소리바꿈 꼴이다. ‘늘앗/느랏’을 한자로 받아적으면서 ‘늘 어(於), 놋 라(羅)’를 써서 ‘어라(어래)’로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어라’ 만으로는 ‘앗(밭)’의 의미가 흐리터분해지면서 ‘밭’이라는 뜻을 도드라지게 할 요량으로 밭 전(田)을 덧대 ‘어라전’이 된다. 그뒤 두 글자로 된 한자 땅이름을 널리 쓰면서 ‘어’를 떼고 ‘나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글깨나 읽었다는 말재기나 선비가 끼어들면서 ‘라(羅)’를 명주(비단)를 뜻하는 한자로 보면서 그만 본뜻을 잃고 샛길로 빠진다. 이 마을 앞을 흐르는 내가 ‘오대천’인데, 같은 냇줄기라도 어디를 흐르느냐에 따라 내 이름은 조금씩 다르다. 이를테면 마을 앞을 흐르면 ‘앞내’요 마을 뒤를 흐르면 ‘뒤내’다. 또 가늘게 흐르면 ‘가느내’요 넓게 흐르면 ‘너브내’요 곧게 흐르면 ‘버드내, 고내’라고 하지 않나. 같은 맥락에서 ‘나전(羅田) 마을을 흘러가는 내’라고 하면 ‘나천(羅川)’이 되어야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羅)’를 ‘명주(명지)’로 뒤쳐 ‘명주내/명지내(明紬川)’로 적은 듯하다. 요컨대 명주내는 ‘나전 마을을 흐르는 내’라는 본뜻에서 말미암은 이름이라고 하겠다.

비단.jpg 훈몽자회(1527)에 나온 '비단'을 가리키는 한자

배달말 한입 더

‘명주’는 누에를 쳐서 얻은 실로 짠 옷감으로 옛 우리 말로는 ‘’이다. 이 말에서 ‘깁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런데 ‘비단’에 자리를 빼앗긴다. ‘비단’은 중국말 ‘匹段(피뚜안)’에서 온 말로, 이 말이 우리 땅에 들어와 소리가 비슷한 ‘비단(緋緞)’으로 바뀐 듯하다. ≪청구영언≫(1728)에 ‘緋緞(비단) 치마’라는 표현으로 볼 때, 이미 그전부터 써온 말로 생각할 수 있다. 앞서 ≪계림유사≫(1103~1104)에 ‘羅(깁 라)’는 [속(速)], ‘綾(비단 릉)’은 [보살(菩薩)], ‘絹(명주 견)’은 [급(及)]으로 나온다. 이때 ‘급(及)’은 ‘깁’을 소리로 받아적은 한자라고 하겠다. 이어 ≪훈몽자회≫(1527)엔 “羅 놋 라, 緞 비단 단, 綾 고로 릉, 紈 깁 환, 綺 깁 긔, 綃 깁 쵸, 絹 깁 견, 錦 금 션, 紬 명디 듀”라고 나온다. 여기서 보듯 비단을 뜻하는 말이 한 가지가 아니라 ‘노(놋), 비단, 고로, 깁, 명디’처럼 여러 가지였음을 알 수 있다.

말난 김에 한 가지 더 보태면, ‘紬 명디 듀’에서 보듯 ‘명주’는 한자말 명주(明紬)가 말밑이 아니다. 배달말 ‘명디’가 ‘명지’를 거쳐 ‘명주’로 바뀌었다.


[일러두기] ‘’처럼 붉고 굵은 글씨로 쓴 글자는 홀소리를 아래아(•)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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