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목이, 높은 곳에 난 좁고 잘록한 길목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15)

by 이무완

‘명주목이’는 임계면 가목리 부수베리 동남쪽에 있는 고개다. ‘명주메기’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明珠項(명주항)’이라고만 나와 있다. 이로 볼 때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빌미로 남긴 첫 공식 기록인 셈이다.

명주항.jpg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1917

≪정선 임계면 지명유래≫(임계면, 2011, 73쪽)엔 “협소한 계곡의 길을 따라 올라 넘어가는 길이 아주 잘록한 계곡을 지나가는, 매우 협소하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오래전 임계면 가목리 주민들이 소금이나 생활필수품을 사러 삼척 지방을 넘나들던 힘겨움이 배어있는 고개다.”하고 말한다.

여기서 ‘목/목이/메기’는 다른 곳으로 빠져 나갈 수 없는 좁다란 길, 곧 잘록한 고갯마루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앞에 붙은 ‘명주’는 어떤 뜻일까.


명주목을 한자로는 ‘明珠項’이라 쓴다. ‘밝을 명(明)’과 ‘구슬 주(珠)’인데, 이는 소리를 빌려 적은 것일 뿐 본래 뜻을 그대로 드러내진 않는다. 말뿌리로 보아 ‘명(明)’은 ‘밝다’의 말뿌리 ‘밝()’을 적은 한자다. ‘마빡(마박), 박치기, 박달재’에서 보듯 ‘머리, 꼭대기, 높다, 밝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땅이름에서는 ‘박, 밖, 발, 불, 붉, 밝’ 따위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말들을 다시 한자로 옮길 때는 소리나 뜻소리를 얽어 ‘박(朴), 백(白), 발(鉢), 불(不), 명(明), 적(赤), 단(丹), 족(足)’처럼 뒤엉켜 드러난다. 이런 까닭으로 오늘날 한자만 보고 본뜻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주(珠)’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옛 땅이름에서 ‘구슬(玉·珍·珠)’ 붙이 소리는 [구ㅅ]처럼 소리나는데 한자로 적으면서 ‘구사/구수/구시/고사’ 따위로 적었다. 이를테면 ≪삼국사기≫(1145)에 ‘고사’를 쓴 땅이름이 있다.


장항구현은 고사야홀차라고도 한다. _권 제37잡지

(獐項口縣 一云古斯也忽次.)


‘고사야홀차’에서 ‘고사야’는 장항구의 ‘장(獐項)’에 대응하는 말마디다. 여기서 ‘고(古)’는 ‘(늙)’으로, ‘사(斯)’는 사잇소리로, 야(也)는 ‘’로 보면 ‘’처럼 되는데, 여기서 사이시옷은 앞엣말에서 ‘ㄱ’을 없애는 구실을 한다고 치면 ‘날아’, 곧 ‘나라’(오늘날 나루)가 된다. 우리 옛말에서 ‘장(獐)’은 ‘/나라/널’이다. ‘장항’은 ‘목/나라목/널목’으로 뒤쳐 생각할 수 있다. 요즘말로 바꾸면 ‘노루목’인데 꽤 흔하게 볼 수 있다. 노루 목처럼, 좁아지거나 들어진 땅모양을 가리킨다. 뒤엣말 ‘홀차’는 장항구에서 ‘구(口)’에 대응한다. 국어학자들은 옛 땅이름 뒷가지로 나타나는 ‘고차(古次), 홀차(忽次)’를 [고지] 비슷하게 소리 났을 것으로 본다. 고대 한국어 영향을 받은 일본말에서 ‘구치(くち)’는 ‘입’을 가리킨다. 지금 우리는 ‘입’이라고 하지만 먼 옛날 삼국시대엔 [고지]나 [구지]로 소리냈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신라 경덕왕에 이르러 지방행정 체제를 정리하면서 배달말로 된 땅이름을 한자식으로 바꾸면서 ‘입’을 나타내던 ‘고차, 홀차’를 ‘구(口)’로 바꾸었다. ‘갑비고차(甲比古次)’가 ‘혈구(穴口)’로 바뀌었고, 요은홀차(要隱忽次)는 양구(楊口)로 바뀐 데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더구나 [구지]나 [고지]는 오늘날 ‘곶(串)’ 소리를 그대로 빼닮았다. ‘입’은 음식이 드나드는 곳(아구, 어귀, 입구)이면서 사람 몸에 난 ‘구멍’이기도 하다. 또, 짐승의 입(주둥이)로 보면 앞으로 쑥 내민 ‘곶’으로도 볼 여지가 있다. 곧, 옛말에서 ‘고차, 홀차, 구’는 ‘곶’이요 ‘높고 뾰족한 곳(岬)’이요 ‘어귀(나루․목)’이다.


길게 말했지만 ‘명주’의 말밑을 ‘+구ㅅ’로 보면, ‘높은 데 있는 길목/뚫린 곶(串)’으로 볼 수 있다. 끝엣말 목/목이/메기(項)는 ‘명주’만으로는 골짜기 사이로 좁다랗게 난 잘록한 길이라는 뜻을 나타내기엔 모자란다 여겨 붙인 겹말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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