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내와 좀내, ‘작음’을 품은 땅이름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13)

by 이무완

‘어천’은 정선읍 애산리에 있는 마을 이름이면서 냇줄기 이름이다. 병목(병항리)에서 서쪽, 개울 건너편에 있다. ‘엇내’는 ‘언내’, ‘좀내’라고도 했고 한자로 적을 때는 ‘어천(魚川/漁川), 두천(蠹川), 고천(蠱川)’이라고도 했다. 이에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 144쪽)은 이렇다.


‘엇내’는 ‘작다’는 뜻을 가진 옛말 ‘’과 ‘내’가 더해진 ‘앗내’에서 온 말로 이를 한자로 쓸 때 ‘엇’을 ‘어’로 보아 ‘漁’로 쓰고 ‘내 川’ 자를 취해 ‘어천’이 되었다. ‘작은 내가 돌아 흐르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언내’라고 발음한다.


땅이름에서는 소리바꿈이 일어나면서 뜻이 달라지거나 넓어지는 일이 흔하다. 가령, ‘앛→ 아치→ 까치→ 작(鵲․까치)’처럼 바뀌면서 아차산, 아차실, 아치울, 까치섬, 까치밭, 까치골, 까치고개 같은 땅이름이 생겨났다. ‘엇내’의 말밑이 ‘아치내’라고 한다면 ‘작은 내’로 보는 해석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옛말에서 ‘앛다’는 ‘작다, 적다, 어리다’는 뜻을 나타낸다. ‘엇내’는 ‘앛다’의 말줄기인 ‘앛-’에 ‘내’를 붙여 생겨난 말이다. ‘앛내’가 뿌리말이다. 그런데 오늘날과 달리 옛말에서는 ‘ㅅ, ㅈ, ㅊ’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았고 소리 바꿈도 흔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앛내’가 ‘엇내’로 바뀌는 일은 자연스럽다.

어천.jpg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1917

‘엇내’가 ‘작은 내’라는 뜻임을 알 수 있는 딴 이름이 바로 ‘좀내’다. 이때 ‘좀’은 ‘좀벌레’를 뜻한다. ≪대동여지도≫(1861)엔 ‘좀 고(蠱)’ 자를 써서 ‘고천’이라고 했다. ‘좀 두(蠹)’를 써서 ‘두천’이라고도 전한다. 다시 ≪정선읍 지명유래≫(2012)를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천(蠱川)’을 “군의 동쪽 6리에 있다. 근원이 대지산(大枝山)에서 나와서 땅속으로 스며들기도 하며 혹은 흐르기도 하여 대음강(大陰江)으로 들어간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가운데 줄임)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1년에 펴낸 ≪조선지지자료≫에는 이곳의 지명이 ‘蠹川’이며 우리말로 ‘죰’라고 부른다.(144쪽)


잘 알다시피 ‘좀’은 옷이나 종이 따위를 갉아 먹어 구멍을 내는 벌레다. 우리나라에서만 사는데 길이는 1센티미터 안팎으로 작은 벌레다. ‘책만 읽는 바보’로 통하는 이덕무(1741~1793)는 ≪선귤당농소≫에서 ‘좀벌레’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흰 좀벌레 한 마리가 나의 <이소경(離騷經)>에서 ‘추국(秋菊), 목란(木蘭), 강리(江籬), 게거(揭車)’ 같은 글자를 갉아먹었다.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나서 잡아 죽이려 했는데 조금 지나자 그 벌레가 향기로운 풀만 갉아먹은 것이 기특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특이한 향내가 그 벌레의 머리와 수염에 넘쳐나는지를 조사하고 싶어서 아이를 사서 반나절 동안 집안을 대대적으로 수색하게 했다. 갑자기 좀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오는 것이 보여 손으로 잡으려 했는데 빠르기가 흐르는 물과 같아 순식간에 달아나 버렸다. 그저 은빛 가루만 번쩍이며 종이에 떨어뜨릴 뿐, 좀벌레는 끝내 나를 저버렸다.


어디 좀내 뿐이랴. ‘좀’을 ‘작다’는 뜻으로 쓴 보기는 얼마든지 있다. 풀이나 나무 이름, 동물 이름 곳곳에 ‘좀-’은 본디 것보다 작다는 뜻을 보탰다. 우리 입에 붙은 말인 좀도둑, 좀벌, 좀생원, 좀스럽다 따위 말들에서도 ‘좀’은 ‘자질구레하다, 잘다, 좁다, 옹졸하다’는 뜻을 더한다. ‘엇내’와 ‘앗내(아치내)’, ‘좀내’는 자연스럽게 뜻넓이가 겹친다. 이렇게 본디 냇줄기를 가리키는 이름이었지만 내 이름으로만 쓰지 않고 마을 이름으로도 굳었다.

덧붙이면, 물고기 어(魚) 자를 쓴 어천(魚川)은 ‘엇내’를 한자 소리를 빌려 적은 땅이름이다.


배달말 한입 더

좀도둑 자질구레한 물건을 훔치는 도둑.

좀되다 사람 됨됨이나 하는 짓이 너무 치사스럽고 잘다.

좀벌 좀스럽게 생긴 벌. ‘토종벌’을 달리 이르는 말.

좀생원 속이 좁고 좀스러우며 옹졸한 사람을 놀리는 말.

좀생이 좀스러운 사람이나 자질구레한 물건.

좀팽이 몸피가 작고 좀스러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좀것 좀스럽게 생긴 물건이나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좀꾀 좀스러운 잔꾀.

좀노릇 좀스러운 일.


[일러두기] ‘죰’에서 보듯 굵고 붉은 글씨로 쓴 글자는 아래아(•)를 홀소리로 쓴 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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