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니재, 이름에 숨은 고개의 모습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19)

by 이무완

정선군 임계면 송계리에서 서쪽 여량면 남곡리로 넘어가는 국도 42호선은 ‘서동로’라고 한다. 이 길에는 ‘너그니재’라는 고개가 있다. 송원동과 남곡리 고사리 아래 사이에는 큰너그니재(720m)가 있고, 송원동에서 임계면 소재지 쪽으로는 작은너그니재(645m)가 있다. ‘큰’과 ‘작은’은 고개의 높이나 크기를 가리킨 말일 테고, ‘재’는 고개를 뜻한다. 그렇다면 ‘너그니’는 어디서 비롯된 이름일까.

≪정선 임계면 지명유래≫(임계면, 2011, 182쪽) 설명은 이렇다.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도에는 ‘큰너근령’, ‘작은너근령’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너건이’라고도 한다. 너그니재는 ‘산자락이 넓거나 늘어진 고개 안쪽’을 뜻하는 ‘넉안’에서 나왔다. ‘넓은’, ‘늘어진’을 뜻하는 옛말인 ‘넙’은 ‘너븐’에서 왔고, 뒤에 오는 말에 따라 ‘넉’, ‘녹’으로 변하는데, 넉안>너간>너근>너그니로 변하거나 녹안>노간>노근>노그니로 변하기도 했다. ‘너그니재’, ‘노그니재’로 불리던 지명은 일제강점기에는 ‘路近嶺’(노근령)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국립지리원 지도에 ‘큰너근령’, ‘작은너근령’으로 나오고, ‘너건이’라고도 했으며, 말뿌리를 산자락이 넓거나 늘어진 고개 안쪽을 뜻하는 ‘넉안’에서 온 말로 본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나온 <조선지형도>(1917)를 보면, 작은너그니재만 ‘노근령’으로 적고, 큰너그니재는 ‘보섭령(步攝嶺)’으로 나온다. ‘보섭’은 쟁기 끝에 끼워 흙덩이를 일굴 때 쓰는 넓적한 쇳조각, 곧 ‘보습’을 가리킨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보습처럼 삐죽하게 생긴 논밭의 한 부분을 뜻하는 ‘보습고지’라고 나오는데, 이로 볼 때 ‘보습’은 땅 모양을 나타낼 때 쓴 말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섭령’은 보습처럼 길쭉하게 뻗은 고개의 생김새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보인다. 아마도 작은너그니재 영향으로 큰너그니재라고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

너그니재.jpg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1917

다시 ‘너그니’의 말뿌리를 톺아보자. 고갯마루가 길고 펀펀하게 늘어진 곳을 예부터 늘재, 느르재, 느랏재라고 했다. 늦은목이/늣목(정선–태백), 느르뱅이(정선 화암면), 넛재(늦재, 태백–봉화) 같은 땅이름에서도 보듯, ‘너르다, 넓다, 늘다, 늦다’ 붙이 말들은 땅이름에서 여러 갈래로 소리바꿈이 일어난다. 자연스런 귀결로 ‘넙, 널, 늘, 넉, 넛, 늦’처럼 소리가 달라지는 일은 조금도 낯설지 않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너그니재’를 ‘넉안’, 곧 ‘고개 안쪽’에서 찾는 해석은 다소 어색하다. 고개란 본디 골짜기 사이 잘록한 마루를 넘는 곳이지, ‘안쪽’이라는 공간 개념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산자락이 넓고 길게 늘어진 고개’로 보아 ‘넉재’나 ‘늦재’ 같은 이름이 먼저 생겨났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여기에 매김씨끝인 ‘은/는’이 끼어들며 소리가 늘어지듯 바뀌어 ‘너그니재’나 ‘느그니재’가 되었다고 하겠다. ‘너건이’라는 이름도 ‘늦은’을 [늑은·느근·느건]처럼 어금지금하게 소리내던 지역말 흔적으로 볼 수 있다.


늘재, 늦재, 넛재, 넉재, 너그니재는 지역마다 다르게 고개 이름을 붙였지만 말뿌리로 보면 모두 ‘넓고 길게 늘어진 고개’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홀소리가 달라졌다고 해서 뜻까지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너그니재’라는 이름에는 그렇게, 고개의 생김새를 바라보던 옛사람들 마음과 말소리가 겹겹이 들었다.

큰너그니재.JPG 큰너그니재는 ‘보섭재’나 ‘보구레재’라고 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배달말 한입 더

보구레 [지역말] 논밭 흙덩이를 일굴 때 쟁기 끝에 끼우는, 넓적한 삽 모양으로 생긴 쇳조각인 보습을 말한다. 이를 지역말로 ‘보구레’라고 한다. ≪훈몽자회≫(1527)엔 ‘犂 보 례 又稱보십頭 又把발외 又駁牛又耕也’에서 보듯 ‘보십’이라고 했다. 표준어는 ‘보습’이다.


밭갈애비/보애비 [지역말] 보구레를 써서 밭 가는 사람을 지역말로 ‘밭갈애비’, ‘보애비’라고 했다. 물론 지역말에게는 유난히 까다롭게 구는 배달말 사전한테는 버림 받은 말이다. 밭갈애비는 ‘밭 가는 애비(사내)’로 얼른 뜻이 귀에 들어오지만 ‘보애비’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말일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아마도 보구레를 끄는 애비(사내)라고 해서 생겨난 말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애비’도 ‘아비’가 표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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