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20)
정선읍 북실리와 애산리 사이에는 계봉(646m)이라는 산이 있다. 이 산은 계봉 말고도 발봉, 발뫼, 벼랑뫼처럼 여러 이름이 있고, ≪대동여지도≫(1861)에는 ‘대음산’으로 나온다.
≪조선지형도≫(1917)에는 상투 계(髻) 자를 써서 ‘계봉(髻峰)’이라 적었는데, 1970년대 지도에 이르러서는 머리터럭 발(髮) 자를 쓴 ‘발봉(髮峰)’으로 바뀌었다. 이후 2011년 지도에서는 한글로 ‘계봉’으로 적었다.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 97쪽)는 “‘발봉’은 벼랑지고 가파른 산을 뜻하는 옛말 ‘벼랑뫼’를 ‘발뫼’로 줄여 부르던 것을, 그 소리를 따라 한자로 적으면서 ‘발(髮)’ 자를 써서 ‘발봉(髮峰)’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오늘날 지도에는 이 산 이름이 ‘조양산’으로 나타난다. 조양산은 본래 ‘대음산’이었는데, ‘음(陰)’ 자가 불길하다고 여겨 1760년 정선군수 최창유가 ‘조양산’으로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이름은 정선 읍내를 감싸듯 돌아 흐르는 조양강 이름을 따르지 않았나 싶다. ≪조선지지자료≫(1911) ‘정선 군내면’엔 한자로 ‘朝陽山(조양산)’만 적었다.
한편 이 산은 정선 읍내에서 볼 때 앞에 있다 하여 ‘남산(南山)’이라고 했고, 풍수지리 영향으로 정선 관아 뒤에 있는 비봉산을 진산(鎭山)으로 삼아, 맞은편에 있는 이 산을 ‘안산(案山)’이라고도 했다. 이처럼 산 하나를 두고 계봉, 발봉, 발뫼, 벼랑뫼, 대음산, 조양산, 남산, 안산 같이 여러 이름을 쓴 데는 같은 산을 바라보되 그것을 해석하는 말이나 문화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제 계봉(髻峰)과 발봉(髮峰)의 말밑을 살펴보자. 계봉은 말 그대로 ‘상투봉’이다. 예전에 장가든 남자가 머리털을 끌어 올려 정수리에 틀어 감아 맨 상투의 모양을 닮았다 하여 상투 계(髻) 자를 썼다고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발봉은 말밑이 다소 뒤숭숭하다. ‘벼랑뫼’가 ‘발뫼’로 되고, 이를 한자로 뒤치면서 ‘발봉’이 되었다는 설명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옛 땅이름에서 ‘벼랑’은 ‘자라 별(鱉)’이나 ‘날 비(飛)’, ‘벼루 연(硯)’, ‘별 성(星)’, ‘보리 맥(麥)’ 같은 한자를 떠올릴 법한데, 어째서 ‘머리터럭 발(髮)’ 자를 썼는지 여전히 물음이 남는다.
여기서 ‘발’을 ‘벼랑’이 줄어든 소리가 아니라 ‘머리·꼭대기·높음’을 뜻하던 옛말로 해석해 볼 여지도 있다. 배달말 ‘바ᆞ갉’은 ‘박, 밭, 밖, 불, 발’처럼 매우 여러 가지 소리로 나타나고 이를 받아쓴 한자도 다양하다. 다락같이 높은 봉우리란 뜻으로 생겨난 이름인 ‘붉뫼’가 [발뫼]로 소리 나고, 이를 받아 적은 한자가 우연히 ‘발(髮)’이 되면서 ‘발봉’으로 적었을 수 있다. 비슷한 보기로 ‘발산’이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 보이는 ‘발산(鉢山)도 산 모양이 절에서 쓰는 공양 그릇 ‘바리’를 닮았다는 유래가 단골로 덧붙지만, 이는 한자 표기를 보고 뒷날 사람이 의미를 덧댄 해석일 수 있다. 실제로는 ‘붉’의 다른 꼴인 ‘발’에 한자를 끼워 맞추지 않았나 싶다. 더 나아가 ‘산’을 뜻하는 ‘불(붇)’이 뿌리말일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불(산)+뫼(산)’처럼 겹말이 되는 문제도 함께 남는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이름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시나브로 달라지기도 한다. 상투봉이 계봉이 되고, 벼랑뫼가 발봉이 되며, 대음산이 조양산으로 바뀐 까닭은 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곧 땅이름에는 ‘이것은 무엇이다’라는 단순한 이름 붙이기를 넘어, 자연에 깃들어 살아온 우리네 삶과 자연을 해석해 온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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