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골이 아닌 벌 마을, 발면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21)

by 이무완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봉정리에 ‘발면(發綿)’이라는 마을이 있다. ≪정선 여량면 지명유래≫(여량면, 2010, 243쪽)는 이 땅이름이 “‘산골짜기’의 옛말인 ‘’과 산자락이 강을 향해 머리를 내민 ‘민’과 합쳐져 ‘벼랑 골 안의 마을’이라는 뜻인 ‘발면’으로 변한 말”로 보았다. 이어, 한자로 적으면서 “‘발(發)’과 ‘면(綿)’을 써 햇볕이 잘 들고 기후와 온화해 목화가 잘 되었고, 겨울에도 솜을 넣어 옷을 만들어 따뜻하게 보냈다”는 해석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설명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과 ‘민’을 붙여 ‘발면’이라는 소리가 되었다는 설명보다 ‘’을 곧바로 ‘산골짜기’로 보고 다시 이를 ‘벼랑골’로 풀어내는 과정이 너무 느슨하여 나같은 뒤틈바리가 보기에도 너무도 덩둘하다.

발면.png <조선지형도>(1917)에 '발면리'라는 마을 이름이 보인다.

<조선지형도>(1917)에서 마을 앉음새를 살펴보면 이러한 물음은 한결 또렷해진다. 발면 마을은 남서쪽 반론산 산줄기가 북동쪽으로 뻗어 장수바위 절벽 아래까지 이어지면서 벌을 이룬 곳에 있다. 장수바위 아래로는 골지천이 크게 굽돌아 흐르는데, 보기에 따라 사방이 둘러막힌 깊숙한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로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산줄기가 강 쪽으로 밀려 나와 생겨난 벌에 있는 마을로 볼 때 더 자연스럽다. 왜 그런가?


앞엣말 ‘발’부터 다시 살펴보자. 땅이름에서 ‘발(發)’은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기보다, ‘들판’을 뜻하는 ‘벌’이나 ‘밝다’의 말줄기인 ‘밝-’의 소리를 빌려 적은 한자일 수 있다. 실제로 ‘벌 안쪽에 있는 마을’을 ‘벌안’이라 하는데, 이들을 한자로 적으면서 발안(發安), 발한(發翰) 따위로 적거나, 뜻을 살려 평내(坪內), 산내(山內)로 적었다. 우리 말에서는 홀소리 바꿈이 잦아, 소리가 조금 다르다고 해서 가리키는 땅의 성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전남 나주의 옛 이름 ‘발라(發羅)’도 이를 뒷받침한다. 나주는 영산강을 끼고 넓은 들이 펼쳐진 땅모양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너르고 펀펀한 땅을 ‘벌’이라고 하는데 이를 소리가 어슷한 ‘발(發)’을 받아적는 일은 매우 자연스럽다. 더욱이 ≪삼국사기절요≫에 ‘나주’의 다른 이름으로 ‘폐나주(廢羅州)’가 보인다. 이때 [폐]는 ‘펴다’의 옛소리를 한자로 옮긴 흔적으로 볼 수 있거니와 ‘나주’가 ‘들이 넓게 펼쳐진 땅’을 가리킨다는 해석과도 잘 어울린다.


뒤엣말 ‘면(綿)’도 산자락이나 벌판이 어느 한 방향으로 길게 내민 모습이라서 [면]이란 소리로 받아 적었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 다만, ‘면(綿)’이 ‘가늘고 길게 이어진다, 부드럽게 펼쳐지다’는 뜻이 있음을 떠올리면 느릿하게 펼쳐진 땅을 나타낸 글자로도 보인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한자 소리나 뜻을 빌려 우리 말을 적어 왔다. 향찰과 이두가 그랬고, <훈민정음>(1447)을 지어낸 뒤에도 땅이름은 한자로 적었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 입에 붙은 땅이름과 한자로 받아적은 땅이름이 어긋나거나, 한자식 땅이름 탓에 오히려 땅 모양을 데알게 하기도 했다.


이러한 점을 두루 생각해 볼 때, ‘발면’은 ‘벼랑 골 안의 마을’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다. 반론산 산줄기가 골지천 쪽으로 밀려 나오면서 펼쳐진 벌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점에서, ‘발’은 ‘벌’을, ‘면’은 길게 이어진 땅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로 볼 때 더 매끄럽다. 결국 ‘발면’은 너른 벌에 있는 마을로 뒤쳐 생각해볼 수 있겠다.


배달말 한입 더

데알다 자세히 모르고 대강 또는 반쯤만 알다

덩둘하다 어리둥절하여 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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