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29)
묵산은 정선군 남면 무릉리로, 증산 동쪽에 있는 마을 이름이면서 산 이름이기도 하다. 옛 이름은 ‘먹매이’, ‘멀미’라고도 했다.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한자로 ‘묵산(墨山)’이라 적고, 한글로는 ‘멀며’로 적었다. ≪정선 남면 지명유래≫(남면, 2011, 110쪽)는 마을 유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증산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예부터 마을 둘레의 산이 검은 돌로 덮여 늘 검게 보였기 때문에 ‘묵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척산천을 끼고 형성된 마을로, 1990년대 초반까지 묵산광산이 있어 한때 번성하였다.
이어 같은 책 111쪽에서는 ‘멀미’를 올림말로 삼아 이렇게 풀이한다.
‘묵산’을 한글로 적은 이름이다. 본래 ‘먹매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변해 ‘멀미’가 되었다. ‘멀’은 ‘묵(墨)’의 옛말 ‘먹’에서 왔고, ‘미’는 산을 뜻하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간추리자면, 마을 이름은 본래 ‘먹뫼’라는 뜻에서 ‘먹매이’라 하다가 ‘멀며’, ‘멀미’로 바뀌었고, 일제강점기에 한자로 적으면서 ‘묵산’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는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정선은 어디를 가든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유달리 이곳만 ‘산이 검어서’ 이름을 붙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먹뫼’보다 앞선 때에 쓰던 이름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애초 ‘검다’의 뜻이 아니라, ‘높고 큰 산’을 뜻하는 ‘감뫼’가 말밑이었을 수 있다. 묵산 마을 앉음새를 보면 동쪽으로 976미터, 서쪽으로 663미터, 남쪽으로 707미터(묵산), 뒤로는 841미터에 이르는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싼 곳이다. 우리 정서로 볼 때 마을 앞을 둘러막듯 우뚝 솟은 산이니 얼마나 높고 큰 산으로 보이겠나. 이 ‘감뫼’가 소리 바꿈으로 ‘검뫼’가 되고, 다시 ‘검’을 ‘검다’의 말뿌리로 보아 ‘먹’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먹뫼’가 되었을 터다. 그뒤 ‘먹매이’를 거쳐 ‘멀미’로 바뀌고, 이를 한자로 적으며 ‘묵산(墨山)’이 되었다고 보아야 자연스럽다. 곧 ‘감뫼 → 검뫼 → 먹뫼 → 먹매이 → 멀미 → 묵산’이라는 변화다. 마을 앞에 선 산 이름이 그대로 마을 이름이 된 셈이다.
이런 해석은 묵산 주변에 있는 땅들과도 잘 어울린다. 이웃한 증산(甑山)과 척산(尺山)도 말밑을 따지면 모두 ‘높은 산’을 뜻한다. 증산은 배달말로 풀면 ‘시루뫼’다. 시루는 떡이나 쌀 따위를 찌는 데 쓰는 둥근 질그릇인데 ‘수리뫼’를 ‘시루뫼’로 데알고 시루 증(甑) 자로 썼을 뿐이다. 곧 ‘수리뫼’가 ‘시루뫼’가 되고, 이를 한자로 옮기며 ‘증산’이 되었다. 척산의 ‘척(尺)’도 길이를 재는 ‘자’가 아니라, 산마루를 뜻하는 ‘재’나 ‘잣’의 소리바꿈으로 보아야 한다. ‘재산’이든 ‘잣산’이든 한자로 적으면서 ‘척산’이 되었으니, ‘높은 산’이란 뜻이다.
이처럼 묵산, 증산, 척산은 모두 산빛을 말하기보다 산의 앉음새와 높이를 먼저 헤아린 이름들이다. 크고 높아 묵산, 증산, 척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