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말로 배우는 땅이름(130)
정선군 임계면에 ‘독토고지’라는 곳이 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어떻게 생겨난 땅이름일까 궁금했다. 뒤엣말 ‘고지’는 ‘곶’에서 온 말로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지만, 앞엣말 ‘독토’는 얼른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정선 임계면 지명유래≫(임계면, 2011, 139쪽)는 ‘독토고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점촌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일설에는 옛날 주변 산에 도토리나무가 많아 마을 주민들이 도토리를 따서 생계를 유지해 ‘도톨고지’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하나 ‘독토고지’가 바른 지명이다. ‘독’은 ‘산’의 옛말인 ‘돋’이 ‘돋’이나 ‘독’으로 변해 생긴 말이다. ‘고지’는 ‘평야나 산기슭이 불쑥 튀어나온 곳’을 말하는 ‘곶’에서 온 말로 ‘독토고지’는 ‘산기슭이 튀어 나온 땅’이라는 뜻이다.
잘 알다시피 곶은 본디 바다 쪽으로 부리처럼 뻗은 땅끝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강이나 들판으로 길게 뻗은 땅도 ‘곶’이라 했다. 이런 쓰임은 정선 지역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실제로 정선읍 가수리 어선골 위에도 ‘독토고지’, ‘도둑고지’라고 하는 산이 있다.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 361쪽)를 보면 다음과 같이 말밑을 말한다.
어선골 위에 있는 산을 말한다. 일설에는 이곳에 도토리나무가 많아 마을 주민들이 도토리를 따서 생계를 유지해 생긴 이름이라고 하나 ‘독토고지’에서 온 지명이다. ‘독’은 ‘산’의 옛말인 ‘돋’이 ‘돋’이나 ‘독’으로 변해 생긴 이름이며, ‘고지’는 ‘평야나 산기슭이 불쑥 튀어나온 곳’을 말하는 ‘곶(串)’에서 온 말로 ‘독토고지’는 ‘산자락이나 기슭이 튀어 나온 땅’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독토고지는 수갈령 재에서 동쪽으로 위가 넓은 산자락이 길게 뻗어 있는 산이다. ‘독토고지’는 세월이 흐르면서 ‘도둑고지’, ‘도둑구지’로 변했는데, 일제강점기에 평창 미탄에서 넘어온 도둑들이 골짜기에서 숨어 살았다고 한다.
산을 가리키는 옛말 ‘돋(산)’과 ‘곶’을 붙여 만든 땅이름으로 본다. 수갈령에서 동쪽으로 위가 넓은 산자락이 길게 뻗은 모양새라서 누구라도 ‘곶’으로 보겠다. 재미난 사실은 두 곳 모두 ‘도토리’나 ‘도둑’ 이야기가 전하는데 실제 일이라기보다 말소리에 이끌려 덧칠한 속설임을 말해 준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독토고지’는 ‘돋+의(으)+곶’으로 쪼갤 수 있다. 이 말이 ‘돋으곶 → 돋으곶 → 돋트고지 → 독토고지’처럼 소리 바꿈을 겪은 듯하다. 여전히 ‘도둑고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도둑’은 말장난으로 보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산등성이가 두두룩하고 펀펀한 모양을 가리키는 ‘도독하다’, ‘도도록하다’ 같은 말과도 잘 어울린다. 다시 말해 ‘독토’는 땅 생김새를 가리킨 말일 수 있다.
이쯤에서 ‘곶’의 쓰임을 조금 더 살펴보자. ≪삼국사기≫에 오늘날 강화도의 옛 이름은 ‘혈구(穴口), 해구(海口), 갑비고차(甲比古次)’로 나온다. 이는 모두 배달말을 한자로 옮겨 적은 이름들인데, 물이 드나드는 곳이자 뾰족하게 튀어나온 땅을 가리킨다. 이때 ‘고차’, ‘구’, ‘화’는 모두 ‘곶’을 한자 소리로, 뜻소리로 적은 셈이다. ‘곶’은 땅이름에 고지, 구지, 코지, 꼬지, 오지, 나아가 ‘꽃’으로 남았다. ‘고차’는 ‘고+ㅊ(>곷)’으로, 화(華)는 ‘곶(>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곶’으로 곧장 이어진다. 하지만, 구(口)가 어떻게 곶이 되었을까 하는 물음이 인다. 국어학자들 말로는 옛말에서 입을 뜻하는 소리가 [굳] 어슷하게 소리 났기 때문에 구(口)를 썼다고 한다.
정선읍에 있는 ‘돌고지’라는 땅이름은 이런 해석을 잘 보여 준다.
넘마을에서 남쪽으로 안마을까지 돌아가는 곳 일대를 말한다. 돌고지는 오랜 옛날부터 넘말과 안말 사람들이 강 옆으로 돌아서 다니던 길이 나 있던 곳이다. ‘돌’은 ‘산’의 옛말인 ‘돋’이 ‘달, 들, 돌’로 변한 말이고, ‘고지’는 ‘평야나 산기슭이 불쑥 튀어나온 곳’을 말하는 ‘곶’에서 온 말이다. ‘돌고지’는 ‘산기슭이 튀어 나온 땅을 돌아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정선읍 지명유래≫, 정선읍, 2012, 266쪽)
이 설명에서 ‘돌’을 산의 옛말인 ‘돋’으로 보았지만, 내 보기엔 ‘돌다(回)’의 말줄기인 ‘돌-’로 보아야 옳다. 강쪽으로 불쑥 내민 땅 탓에 빙 돌아가는 자리로 볼 때 오히려 땅을 더 잘 보여준다. 그런데 임계면 문래리에 있는 ‘모란고지’는 설명이 쉽지 않다. 길지만 설명을 그대로 들어본다.
가는골에서 하동쪽으로 돌아가는 곳을 말한다. 가는골 남서쪽에서 도로를 따라가다보면 모퉁이를 돌아가게 되어 있다. 모퉁이를 사투리로 ‘모랭이’라고 하고 ‘모랭이’를 옛날에는 ‘모란’으로 불렀다. ‘모란’은 본래 ‘모퉁이 마을’이라는 뜻인 ‘몰앗’에서 유래된다. 즉 ‘몰’은 ‘산’을 뜻하고 ‘앗’은 ‘밭’을 의미하므로 ‘몰앗’은 ‘산 안쪽에 있는 마을’로 풀이할 수도 있다. 이 ‘몰앗’이 ‘몰안’으로 변해 다시 ‘모란’이 되었는데, 오래 전 이곳 일대를 ‘모란고지’라고 불렀다. ‘고지’는 ‘고디’에서 나온 말로 산자락의 근원을 나타낸다. (≪정선 임계면 지명유래≫, 임계면, 2011, 261쪽)
‘모란’이 본디 모퉁이 마을을 가리키는 ‘몰앗’이었다는 설명엔 고개를 삐끗 꼬게 된다. 다만 ‘모란’을 ‘모퉁이 마을’이라는 뜻인 ‘몰앗’에서 유래한 땅이름으로 보면서도 슬그머니 ‘산 안쪽에 있는 마을’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는 여지도 남겨놓았다. 결국 마을 앉음새를 눈여겨 살펴본 뒤에 판단할 수밖에 없다. 다만 뒤엣말 ‘고지’가 부리처럼 길게 내민 산자락을 가리킨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처음으로 돌아가 ‘독토고지’는 ‘도토리’나 ‘도둑’하고는 병아리눈곱만큼도 관련이 없다. 오히려 땅 모양을 살펴 지어낸 이름으로, 산을 가리키는 옛말 ‘돋’과 ‘곶’이 만나 만든 이름이다. ‘독토고지’를 비롯한 정선 곳곳에 남은 ‘-고지’들은 사람이나 사건보다 먼저 땅 생김새를 앞자리에 두고 살펴 자연스럽게 생겨난 이름들이다. 말은 바뀌어도 산자락은 남았고, 그 모양이 이름으로 굳어 지금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