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으로 잘못 아는 나루, 벽란도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31)

by 이무완
벽란도(경향신문).jpg 기사 출처: ≪경향신문≫ 2026. 1. 7. 26면 〈벽란도〉


지난 5일 중국에 간 대통령이 ‘벽란도 정신을 주목하자’고 말한 뒤, ‘벽란도’를 다룬 기사들을 볼 수 있다. 대개는 “고려 시대 예성강 하류에 ‘푸른 물결의 나루’ 벽란도(碧瀾渡)가 있었다.”는 식으로 말밑을 풀어놓는다. 이런 설명이 거듭해 나오면서 벽란도를 여전히 ‘물빛 고운 항구’로만 데알기 쉽다.


고백하자면, 나도 오래도록 ‘벽란도’를 예성강 끄트머리쯤에 있는 ‘섬’으로만 알았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라면 항구라기보다 섬이지 않겠냐고 대수롭잖게 여겼고, 나루 ‘도(渡)’ 자를 섬 ‘도(島)’ 자로 내풀로 바꾸어 떠올린 탓도 있다. 여기에 ‘예성강 하구에 있던 고려의 국제 무역항, ‘코리아’라는 이름을 알린 항구’라는 교과서 서술을 그대로 받아들여 온 까닭도 있다.


하지만 벽란도는 섬이 아니다. 오늘날 행정구역으로는 개성특별시 개풍구역에 해당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개성 서쪽 선의문에서 30리라 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개성부 서쪽 36리에 있다고 적었다. 12세기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온 서긍(徐兢)이 남긴 ≪고려도경≫(1124)에는 ‘벽란도’라는 이름의 유래로 보는 ‘벽란정’도 나온다.


벽란도는 푸를 벽(碧), 물결 란(瀾), 나루 도(渡) 자를 쓴다. 벽란도 앞을 흐르는 강물을 ‘벽란강’이라고도 했다. 한자 뜻만 놓고 보면 ‘푸른 강물이 흐르는 나루’로 풀이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자만으로는 벽란도의 본 모습을 온전히 말하기 어렵다.


≪훈몽자회≫(1527)를 보면 벽(碧)은 파랄로, 란(瀾)은 ‘믓결’로 새겼다. 옛 땅이름에서 ‘벽’은 ‘푸르다’는 빛깔을 가리킨 말일 수도 있지만, 배달말 ‘벼랑’을 받아 적은 글자로 볼 여지도 넉넉하다. 평북 정주 출신 시인 백석은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고 쓴 대목을 떠올려 보자. 옛말에서 ‘벽’은 ‘바람’이라 했는데, 이는 파랄과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리로나 말맛으로나 멀지 않다.


강원도 평창에서 정선으로 넘나들던 고개인 벽파령(碧波嶺)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고개를 지역에서는 ‘벨패령’이라 했다. 여기서 ‘벨’은 ‘베랑’, 곧 벼랑이 줄어든 말로 볼 수 있다. 이런 보기를 함께 놓고 보면 ‘벽란’은 ‘벼랑 안’이 줄어든 말일 가능성이 크다. ‘바람 안’을 ‘벨 안’이나 ‘벡 안’으로 쓰다가, 이를 한자로 ‘벽란’이라 적었을 법하다. ‘골 안’이 ‘고란’으로, ‘곶 안’이 ‘고잔’으로, ‘몰 안’이 ‘모란’으로 된 것처럼 말이다.

벽란도.jpg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1917

<조선지형도>(1917)에서 벽란도 나루가 자리한 곳을 보면 이런 짐작이 굳어진다. 미라산(203m)과 백년산(195m) 사이, 바위 벼랑이 바짝 죄어든 골짜기 안에 나루가 있다. ≪송도지(松都誌)≫ 권2 ‘산천 예성강’에 실린 기록도 이를 뒷받침한다. 조금 길지만 들어본다.


(예성강은) 황해도 강음현의 부읍포 아래에서 나와 송도부 서쪽으로 흘러 이포(梨浦)나 전포(錢浦), 벽란도(碧瀾渡)가 된다. 그 뒤 동쪽으로 흘러 ‘예성강’이라 하고, 남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고려와 송나라 때에 모두 이곳에서 배를 띄운 까닭에 ‘예성강’이라 했다. ≪송사(宋史)≫에, “명주(明州)에서 바다로 나아가 순풍을 만나면 사흘 만에 큰 바다로 들어가고, 또 닷새 만에 묵산(墨山)에 이르러 그 땅으로 들어간다. 묵산에서 섬들을 지나면, 길이 구불구불하고 험준한 바위 사이로 배가 매우 빠르게 나아가, 이레 만에 예성강에 이른다. 강은 두 산 사이에 있어 돌로 된 좁은 계곡에 묶인 듯하며, 물살이 급히 흘러내리니 이른바 ‘급수문(急水門)’이라 한다. 가장 험악한 곳이다.”라고 했다.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엔, “급수문은 개성 남쪽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데, 모습이 마치 무협(巫峽, 장강의 험준한 협곡)과 같다.”고 썼다.


벽란도는 흔히 ‘푸른 물결이 이는 나루’로 풀이하지만, 옛 기록과 땅 모양새를 함께 살펴보면 풍경만으로 설명하기에 빈틈이 많다. 서쪽 미라산 줄기와 북쪽에서 뻗어온 백년산 줄기 사이로 좁다란 바위 골짜기를 이루고, ‘급수문’이라고 할 만큼 물살이 빠르고 깊게 흐르는 나루는 오히려 ‘벼랑 안’이라는 설명에 더 가깝다. 결국 ‘벽란’은 물빛이 아니라 땅 모양새를 특징으로 잡은 땅이름이고, 벽란도는 ‘벼랑 사이(안)에 있는 나루’가 자연스럽다.


[일러두기] 바람처럼 붉고 굵게 쓴 글자는 지금은 쓰지 않는 아래아(•)를 홀소리로 썼음을 나타낸다.



≪송도지(松都誌)≫ 권2 ‘산천 예성강’ 원문

禮成江 ○黃海道江陰縣助邑浦之下, 流至府西爲梨浦, 又□爲錢浦, 又爲碧瀾渡, 又東爲禮成江, 南入于海, 高麗朝宋, 皆於此發船, 故謂之禮成. 『宋史』, 自明州泛海遇便風, 三日入洋. 又五日抵墨山, 入其境. 自墨山過島嶼, 詰曲嶕石間, 舟行甚駃, 七日至禮成江. 江居兩山間, 束以石峽, 湍激而下, 所謂急水門, 最爲險惡. 又『大明一統志』, 急水門在開城南海中, 宛如巫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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