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같은 산, 다락산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32)

by 이무완

말아, 다락 같은 말아,

너는 즘잔도 하다 마는

너는 웨 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 편인 말아,

검정 콩 푸렁 콩을 주마.

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데 달을 보며 잔다.


정지용이 쓴 시 <말>이다. '검정 콩 푸렁 콩'을 줄 테니 슬퍼하지 말라고 아이는 언제나 사람 편인 ‘다락같이’ 큰 말을 달랜다. “다락같은 말아”에서 ‘다락같다’는 말은 사전 올림말이다. ‘물건값이 매우 비싸다’는 뜻과 함께, ‘덩치나 규모, 정도가 매우 크고 심하다’는 뜻이 있다. 다락은 한옥에서 부엌 천장 위쪽으로 물건을 둘 요량으로 만든 공간으로, 방에서 오르내릴 수 있게 문을 내고 이 층처럼 꾸민 곳이다. 말은 크고 우람해서 아이라면 고개를 젖혀 올려다봐야 하니 다락같다는 표현은 적절하다.


그렇다면 정선군 여량면 구절리 본동 북서쪽에 있는 ‘다락산’도 다락같이 높은 산이라서 다락산일까. ≪정선 여량면 지명유래≫(여량면, 2010, 151쪽)는 다락산의 말밑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락산은 ‘산’의 옛말인 ‘다ᆞ갈’에 ‘산’이 붙어 ‘달앗산’, ‘다락산’으로 변화한 말이다. 이를 한자로 쓰면서 ‘다락(多樂)’이라고 했다.” 산 정상은 해발 1019미터에 이를 만큼 높은데, “평평한 육산으로 산나물과 약초가 풍부하다”고 덧붙인다.

다락산.jpg 정선군 구절리 '다락산' (지도출처: 조선지형도, 1917)

그러나 ‘달앗산’이 ‘다락산’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은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고 버긋한 구석이 있다. ‘달’은 고구려말 계통으로, 한자로는 흔히 ‘達’을 써서 ‘산’이나 ‘높다’는 뜻을 나타낸다. 그런데 뒤엣말 ‘앗’은 어디서 생겨난 말마디인지 생게망게하다. ‘늘앗, 달앗, 별앗’에서 보는 ‘앗’은 밭을 가리키던 옛말이다. ‘달밭(밭의 'ㅂ'은 지금은 사라진 여린비읍(ㅸ)을 썼다)의 ‘ㅂ’ 소리는 흔히 앞에 유성음(ㄹ)이 오면 떨어지면서 ‘앝’으로 바뀌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달밭>달앝>달앗>다랏’으로 바뀐다. 펀펀한 산꼭대기에 산나물과 약초가 널린 곳이라면 ‘달밭’이라는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더욱이 닽밭이 있는 산이라면 ‘달앗산’이나 ‘다랏산’이란 이름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런데 한자로 적는 과정에서 [앗]이나 [랏]으로 소리나는 한자가 없어 소리에 걸맞는, 좋은 뜻을 얽어 ‘다락(多樂)’이라고 썼을 법하다. 더구나 내남없이 익숙한 말이 ‘다락’인 데다 다락엔 ‘높다’는 뜻도 있는 까닭에 시부저기 ‘다락산’으로 바꾸었으리라. 다만 옛 땅이름에서 ‘달밭’은 대체로 달전(達田)이나 월전(月田)으로 뒤치기 일쑨데 ‘다락’이라는 소리로만 적은 보기라 드물고 귀하다. 물론 처음부터 산이 다락같이 높다 하여 ‘다락산’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 ‘다락’은 높은 곳을 뜻하는 ‘달(達)’에 자리를 나타내는 뒷가지 ‘악’을 붙여 만든 말 아닌가. ‘다락같은 말’이 그렇듯 ‘다락같은 산’이라서 ‘다락산’이 되었다는 설명은 생게망게하지 않고 오히려 간동하다.


배달말 한입 더

시부저기 ‘시부적’에 어찌씨를 만드는 뒷가지 ‘-이’가 붙은 꼴이다.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구는 모양을 나타낼 때 ‘시부적시부적’이란 말에서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시부적’은 ‘쉽다’의 ‘쉽-’과 ‘슬쩍’의 ‘쩍’이 붙어 생겨난 말로 본다. 작은말은 ‘사부자기’다.

간동하다 흐트러짐이 없이 가지런하여 단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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