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마령, 별이 손끝에 닿는 고개라고?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33)

by 이무완

아질아질 꽃베루 지루하다 성마령

지옥같은 이 정선을 누굴 따라 나 여기 왔나


이는 <정선아리랑>의 한 대목이다. 이 노래는 정선군수 오횡묵(吳宖默 1834∼1906)의 아내가 지었다고 전한다. 오횡묵이 정선으로 부임할 때, 부인은 가마를 타고 왔는데 “높고 험한 성마령을 넘고 지루한 관음베루를 지나가는 동안, 생전 처음 가보는 길이라 참기 어려운 고생을 하여 울면서 들어온 심정을 읊은 노래”라고 한다(≪정선아리랑≫, 정선아리랑문화재단, 2010, 126쪽). 성마령(973미터)을 넘자면 평안역에서 하루 묵은 뒤 한치를 넘어서 가야 한다. 그만큼 성마령과 관음베루는 넘나들기 힘든 길이었고, 그 고단함이 노랫말에 고스란히 담겼다. 가물가물한 골짜기 사이로 굴러떨어질 듯한 벼룻길이니 얼마나 마음 졸이며 느럭느럭 넘었겠나.


그래서 하도나 고개가 높아 ‘별을 어루만지는 고개’라서 별 성(星), 어루만질 마(摩), 재 령(嶺) 자를 써서 ‘성마령’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한자 뜻풀이에 머문 설명일 뿐, 고개의 실상을 제대로 짚지 못한다. 조금만 해도 배달말 땅이름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한자 이름이 생겼다고 보아야 한결 자연스럽다.

성마령1.png 성마령 (지도출처: 조선지형도, 1917)

땅이름에 쓰인 성(星)은 하늘에 뜬 별이 아니다. 땅이름에서는 ‘벼랑’이나 ‘비탈’을 나타낼 요량으로 곧잘 별 성(星) 자를 쓴다. 벼랑은 ‘별ㅎ’나 ‘벼로’에서 생겨난 말로 ‘낭떠러지’나 ‘비탈진 땅’을 말한다. 이 말에 장소를 나타내는 뒷가지 ‘-앙’을 붙여 ‘벼랑’이란 말이 생겨났다. ‘비탈’은 ‘빗달’에서 왔다. 이때 ‘빗-’은 빗나가다, 빗금, 빗장, 비스듬히 같은 말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곧 빗달은 비스듬하게 높은 땅이다.


이처럼 ‘별ㅎ’와 ‘벼로’와 ‘빗’은 본디 꼴이 뭔지 알아보기 힘들 만큼 여러 모습으로 바뀐다. 벼루, 베리, 비리, 베랑을 지나 벼락, 베틀 따위로도 둔갑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성마령의 ‘성’은 ‘별ㅎ’나 ‘벼로’에서 온 말로 볼 수 있다. ‘별ㅎ’ 소리를 따서 別(별), 鱉(별), 별오(別鰲), 별어(鼈魚), 별랑(別浪)를 쓰거나 벼루, 별, 벼리 같은 뜻으로 쓰는 硯(연), 星(성), 綱(강)을 썼다.


이를테면 정철이 쓴 <성산별곡>은 “엇던 디날 손이 / 성산(星山)의 머믈며셔 /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듯소” 하고 시작한다. 여기서 ‘성산’은 오늘날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별뫼’다. 또, ≪삼국사기≫에 보이는 비례홀(比例忽), 비화(比火), 비사벌(比斯伐·比自火), 비달홀(非達忽) 같은 지명에서 ‘비례·비·비사·비달’은 모두 비탈진 땅을 가리킨다. 고려가요 <동동>의 “유월ㅅ 보로매 아으 별해 바룐 빗 다호라(유월 보름에 아! 벼랑가에 버린 빗 같아라)”에서 ‘별’도 비스듬한 땅을 뜻한다. 이처럼 ‘별’은 물을 뜻하는 ‘내’나 고개를 뜻하는 ‘재’와 곧잘 어울려 별내(경기 남양주), 별재(강원 통천), 별어실(정선 남면) 같은 땅이름을 만든다. 이때 ‘별’은 별(鼈, 別), 별오(別吾·別午), 별우(別隅)처럼 소리를 빌려 적거나, 성(星), 연(硯), 맥(麥)처럼 뜻소리로 나타냈다. 따라서 성마령의 ‘성’은 벼랑을 뜻하는 [별] 소리를 적은 한자로 보아야 한다.


성마령의 ‘마(摩)’는 ‘간다, 어만진다’는 뜻으로 새기지만, 여기선 [마]라는 소리를 받아적은 한자로 볼 수 있다. 삼국시대 왕과 벼슬아치를 가리키던 마립간, 막리지를 비롯해서 말나리, 말벌, 말잠자리, 용마루, 산마루, 말고개(마치), 말바위(마암), 말뫼(마산), 마등령, 마식령, 마상평(마룻뜰) 같은 땅이름에서 ‘마립, 막, 마루, 말’은 높다, 크다, 으뜸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정선 지역 땅이름인 맛두둑(마평), 말루, 말미, 마전치, 만지산, 마들랜 같은 땅이름도 ‘말’과 의미가 통한다.


아무튼 ‘성마령’을 배달말로 풀면 ‘별ㅎ+마루+재’와 같은 짜임으로, ‘별마루재’다. 곧 험하고 가파른 벼랑을 올라서야 비로소 잿마루에 닿을 수 있는 고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별을 어루만지는 고개’라는 해석은 벼랑을 뜻하는 ‘별ㅎ’을 하늘에 돋아나는 별로 잘못 알고 지어낸 한자 풀이였던 셈이다. 물론 하늘의 별을 딸 만큼 높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랬을 때는 “아질아질 꽃베루 지루하다 성마령”이라는 노랫말에 담긴 정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땅이름은 본디 백성말이요 지역말이다. 그곳 생김새뿐 아니라 고개를 오르내리며 살아온 사람들 마음과 삶이 엉게덩게 무늬처럼 새겨져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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