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벌과 고내와 꽃베루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35)

by 이무완

우리 얼굴에 있는 ‘코’나 꽃봉오리처럼 삐죽 튀어나온 땅을 예로부터 ‘곶’이라 했다. 이 말은 한자로 串(곶), 岬(갑), 華·花(화) 따위로 적었다. 그보다 더 오래전에는 고차(古次), 구(口)로도 적었다. 입을 뜻하는 구(口)가 ‘곶’의 뜻으로 썼다는 게 어리둥절하지만, 옛말에서 ‘입’을 [곧]에 가깝게 소리내던 흔적과 맞닿아 있다.


정선군에도 ‘곶’과 얽힌 땅이름이 적지 않다. 눈 돌리는 곳마다 산으로 둘러싸인 데다 물줄기가 대담하게 흐르면서 골골이 곶과 같은 땅을 빚은 까닭이다. 임계면 송계리의 ‘고두벌’, 임계면 임계3리의 ‘고내’, 여량면 여량리의 ‘꽃베루’가 모두 그러한 보기다. 강이나 내, 들판 쪽으로 쑥 밀려 나온 땅만큼 뚜렷한 특징도 드물다. 이러한 까닭으로 ‘곶’이라는 말은 고지, 구지, 코지, 꾸지, 오지처럼 여러 꼴로 둔갑해서 우리 땅 곳곳에 남았다.


임계면 송계리의 ‘고두벌’은 임계천이 마을을 시계 방향으로 휘돌며 만들어 낸 들판이다. 여기서 ‘고두’는 ‘곶’, 곧 산자락이 크게 튀어나온 데를 가리킨다. ‘곶의 벌’이 ‘곶으벌’을 거쳐 ‘곧으벌→고드벌→고두벌’로 소리바꿈한 결과로 보인다. 결국 고두벌은 ‘곶이 있는 벌판’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고내’는 어떻게 생겨난 이름일까. ≪정선 임계면 지명유래≫(임계면, 2011)에는 ‘고내’를 옛말 ‘곶안’에서 비롯한 땅이름으로 설명한다. “마을 북쪽에서 뻗어 내린 산자락이 튀어나온 곳 안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으로“‘곶’은 ‘산자락이 튀어나온 곳’이라는 뜻으로 ‘곶안’이 ‘곧안’, ‘고단’으로 변하면서 ‘안’을 훈자 훈인 ‘내’로 써서 ‘고내’가 되었는데, ‘고’를 ‘꽃’으로, ‘내’를 ‘흐르는 냇물’로 보아 ‘화천(花川)’이라고 했다.”고 말한다.

나름 일리가 있지만, 다르게 해석할 여지도 있다. 고내는 두전동 쪽에서 오는 냇줄기와 갈마동·금방동 쪽에서 오는 냇줄기가 곶 끝에서 만나는 곳에 마을이 있다. 그렇다면 ‘곶 안’이 아니라 ‘곶내’, 다시 말해 ‘곶 끝에서 만나는 내’라는 뜻으로 생겨난 이름일 수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냇물의 모양과 흐름, 만나는 자리를 매우 세밀하게 살펴 이름을 붙였다. 고내의 다른 이름인 청계천이 ‘맑은 내’라는 물빛에서 비롯된 이름인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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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냇줄기 모양이나 특징, 흐르는 곳에 따라 갖가지 이름을 지어냈다. 고내의 다른 이름인 청계천만 해도 ‘맑은 내’라는 물빛을 보고 지은 이름인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조선지지자료≫(1911)에 보면 내 이름으론 보이지 않고 마을 이름에 ‘花川里 고’로 적었다. 이는 옛말에서 ‘곶’과 ‘꽃’의 소리가 같아 뜻이 뒤섞이면서 본래 땅이름이 품은 뜻을 잊고 꽃(花·華)과 관련한 유래를 덧붙이거나 일부러더 좋은 뜻이 든 한자를 골라 쓴 결과로 보아야 한다.


여량리에 있는 ‘꽃베루’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이전까지 정선에서 여량을 거쳐 강릉으로 가던 험한 길목이었는데, 여기서 ‘꽃’은 꽃이 아니라 ‘곶’에서 온 말이다. ‘베루’는 물가를 끼고 도는 벼랑을 뜻하므로, 꽃베루는 ‘꽃이 핀 고갯길’이 아니라 곶처럼 불쑥 튀어나온 고개를 넘는 벼랑길을 가리킨다.


요컨대 땅이름에서 ‘꽃-’은 ‘곶(串)-’에서 온 말일 때가 많다. 배달말사전은 ‘곶’을 “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뻗은 육지의 한 부분”으로 풀이하지만, 꽃뫼(<곶뫼), 꽃재(<곶재), 꽃바위(<곶바위), 꽃배미(<곶배미), 꽃내(<곶내)에서 보듯, 강과 내, 들판 쪽으로 길게 뻗은 산줄기나 땅모양을 가리키는 말로도 널리 쓰였다. ‘꽃’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곶’의 흔적을 살피는 일은, 땅의 생김새와 옛사람의 눈길을 함께 되살리고 배달말을 가꾸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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