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36)
정선군 북평면 북평리 아창골 서쪽에 ‘석두’ 마을이 있다. 돌 석(石), 머리 두(頭) 자를 썼다. 우리 말로 뒤치면 ‘돌머리’ 마을인데, 말맛은 썩 개운치 않다. 되도록 좋게 터를 풀고 이름도 좋게 붙이는데 돌머리라니 덩둘하다. 돌머리는 매우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아닌가.
≪정선 북평면 지명유래≫(북평면, 2007, 101쪽)를 찾아보면, 두 가지 설명을 들어놨다. 하나는 “이곳에 우뚝 솟아있는 큰 바위가 마치 사람 머리같이 생겼다고 하여 ‘석두’라고 불렀다”고 하고, 다른 하나는 ≪조선환여승람≫ 정선군 편에 나온 기록을 따서, “석대동(石臺洞)은 군 북쪽에 있으며, 세상에 전하기를 고려 태조 때 세웠다고 한다. 석탑을 세운 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하면서, 이 일대에 절이 있었고, 절에 있던 오층석탑이 1990년대 초반에 도난당했다는 이야기를 보태놓았다. 하지만 이들 설명만으로는 ‘석두’가 석가여래상의 머리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단순히 ‘돌로 된 머리’를 뜻하는지 흐리터분하다. 무엇보다 땅이름을 불상이나 바위 모양에만 기대는 해석은 아쉬운 데가 있다.
‘석두’, 곧 ‘석대(石坮)’는 항동(항골)에서 아차동을 지나 장평(진드루)으로 질러 가는 길목에 있다. 지도를 보면 곧장 나아가면 빠를 듯한데, 길은 석대 앞에서 크게 휘어져 돌아간다. 자연스런 귀결로 여기서 ‘석(石)’은 ‘돌’이 아니라 ‘돌아간다(回)’는 뜻으로 썼을 가능성이 높다. ‘석대’의 ‘대(坮)’는 높은 곳을 뜻하는 말이다. 장평 쪽에서 보면 치받이 가장 높은 지점이면서, 크게 돌아 나가는 자리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갯머리, 길머리, 들머리, 물머리 같은 말에서 보듯 ‘머리’는 어떤 곳으로 들어오거나 나가는 어귀나 첫머리, 맨 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석두’는 ‘돌아가는 길머리’를 가리키는 ‘돌 머리’라고 할 수 있는데, 한자로 적으면서 ‘석두(石頭)’, ‘석대(石坮)’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보기로 임계면 용산리에 있는 ‘전평(錢坪)’을 들 수 있다. 이곳을 가리키는 본디 이름은 ‘돈들’이었다. 여기서 ‘돈’은 화폐가 아니라 ‘돈다, 돌아간다’의 매김꼴이다. 실제로 마을을 감싸듯 물줄기가 크게 S자 모양을 그리며 휘돌아 나간다. ≪정선 임계면 지명유래≫(임계면, 2011, 245쪽)엔 “‘골지내(骨只川)가 휘어서 돌아나가는 곳의 들’이어서 ‘돈들’이라고 한다. 절경이 수려하며 풍요로운 들판의 토질이 기름지고 살기 좋은 곳이다. 우리말 지명인 ‘돈들’은 1918년 조선총독부가 편찬해 육지측량부에서 발행한 <조선지형도>에 ‘錢坪’으로 쓰이면서 와전되었다.”고 말한다. 마을 앞을 흐르는 냇줄기도 일제 때 ‘골지천’으로 바뀐 이름인데, ≪대동여지도≫에는 ‘죽현천(竹峴川)’으로 나오고, 금대산 창죽골에서 흘러온다 하여 ‘창죽천’이라고도 했다. 이름이 바뀌면서 냇줄기에 담긴 뜻도 흐려진 셈이다.
이처럼 ‘석두’는 한자 뜻풀이로 쓴 ‘돌머리’가 아니라 산길을 오가던 사람들 마음이 담긴 땅이름이다. 길이 가장 높아지는 자리에서 크게 돌아 나가는 어귀라서 ‘돌머리’라 했고,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석두, 석대’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임계면 용산리의 ‘돈들–전평’도 일제 강점기에 말밑을 생각하지 않고 마구발방 한자로 적으면서 본뜻이 흐려진 보기라고 하겠다. 땅이름을 바로 읽는 일은 곧 땅을 읽고, 그 땅에 살아온 사람들 삶과 발걸음을 되살리는 일이다.
갯머리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의 어귀.
길머리 큰길에서 좁은 길로 들어가는 어귀.=길목.
들머리 들어가는 맨 첫머리.
물머리 흘러 들어오거나 나가는 물의 맨 앞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