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에 스민 ‘달’과 ‘다래’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40)

by 이무완

‘키위’를 가리키는 배달말은 ‘다래’다. 20세기 초 중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중국 서남부에서 다래나무 종자를 뉴질랜드로 가져가 재배하면서 이를 ‘차이니즈 구스베리’라고 했다. 이후 개량을 거쳐 수출할 요량으로 상품 이름을 찾다가, 뉴질랜드 나라새인 키위새와 닮았다 하여 ‘키위(kiwi)’라는 이름을 얻는다. 우리는 이 열매를 ‘키위’라고도 하지만 ‘양다래’, ‘참다래’라고도 했다. 그러나 <청산별곡>에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라고 한 대목에서 보듯, 우리 땅에는 예부터 자생하는 ‘다래’가 있었다. 이 다래는 ‘달다’의 말뿌리 ‘’에 뒷가지 ‘’를 붙여 ‘돌애래→다래’로 소리바꿈한 말이다. 열매를 따 먹고, 어린순은 나물로 해 먹었다.


이처럼 우리 삶에 가까운 만큼 ‘다래’는 땅이름에도 적잖이 보인다. 다래골, 다래들, 다랫벌은 물론이고 아예 ‘다래’라는 마을 이름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 땅이름에서 ‘다래’는 모두 열매 다래에서 말미암은 것일까.


먼저 ‘다래’라는 마을부터 보자. 이곳은 정선읍 덕송리 송오 북동쪽에 있다.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이를 ‘月川里 다’로 적었다. ≪정선읍 지명유래≫(2012)는 마을이 강을 끼고 달처럼 둥글게 생겼다고도 하지만, 더 믿을 만한 풀이로 ‘산’이나 ‘들’을 뜻하던 옛말 ‘’에 ‘내’를 붙여 ‘달내’가 되었고, 이것이 ‘다래’로 바뀌었다고 본다. 이를 한자로 써서 ‘월천(月川)’이나 ‘월내(月乃)’로 적었다. 곧 ‘다래’는 나무열매인 다래가 아니라 ‘냇물이 흐르는 들판’을 가리키는 땅이름이다.


‘다래골’은 북평면 나전리 가느드루 서쪽의 좁은 골짜기다. ≪정선 북평면 지명유래≫(2007)는 골짜기 안쪽에 다래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라고 설명하면서도, 동시에 ‘다래’를 ‘좁은 산의’라는 뜻으로 보아 ‘달애골→다래골’로 바뀌었다는 풀이도 같이 달았다. 이때 ‘다래’는 산을 뜻하는 ‘’과 매김자리토씨 ‘의()’를 붙여 만든 말이다.


‘다래들’은 정선읍 회동리와 용천리에 걸쳐 있는, 너른 들판이다. 조양강이 굽이돌며 생겨난 들이 마치 달 모양을 같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는 설명도 있으나, ≪정선읍 지명유래≫는 ‘산’을 뜻하는 ‘’과 매김자리토씨 ‘의()’와 ‘들’을 붙여서 ‘달애들’이 ‘다래들’로 되었다고 보았다. 곧 ‘산 밑에 있는 들판’이라는 뜻이다.


여량리 시내 남쪽에 있는 너른 들은 ‘다랫벌’, ‘다래평’이라고 했다. 다람쥐가 많아 붙은 이름이라는 속설도 있지만 다람쥐의 옛말은 ‘래미’였기 때문에 터무니없다. ≪정선 여량면 지명유래≫(2010)는 ‘산’을 뜻하는 ‘달’과 벌판을 뜻하는 ‘벌’을 붙여 만든 이름으로 풀이한다.

다래골과다래들.jpg 앞에서부터 다래(월내), 다래골, 다래들(월평), 다랫벌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1917)

이처럼 ‘다래’가 들어간 땅이름은 겉보기와 달리 나무 열매인 ‘다래’보다 ‘산’이나 ‘높은 곳’, ‘땅’, ‘들’을 뜻하던 옛말 ‘’에서 말미암은 것이 적지 않다. 하늘에 뜬 달(月)과 산을 뜻하는 ‘’의 소리가 어금지금한 탓에, 달을 닮았다거나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자리라거나 ‘’에 매김자리토씨 ‘’가 붙어 다래나무가 많다는 식으로 유래가 덧붙었다.


≪계림유사≫에 “달은 돌이라 한다(月曰突)”고 한 기록에서 보듯, 옛말에서 ‘달’은 ‘돌’에 가까웠다. 우리 땅이름에 ‘월(月)’이나 ‘달(達)’이 들어간 산 이름이 유난히 많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작은 산을 뜻하던 ‘아사달’이 ‘앗달’을 거쳐 ‘구월산’이 된 보기가 이를 잘 보여 준다. 양달, 음달, 빗달의 ‘달’은 하늘의 달이 아니라 ‘땅’을 말하며, 산 이름에 ‘달(達)’이나 ‘월(月)’이 들어간 것이 많은데, 산의 옛말이 ‘’이었기 때문이다. 석달현(함경 안변)이 ‘난산현’이 되고, 가지달현(함경 안변)은이 ‘청산현’이 된 데서 보듯 끝자리에 쓴 ‘달(達)’은 ‘산’을 말한다면, ‘달홀’(>고성, 강원 고성), ‘달을성현’(>고봉현, 경기 고양), ‘달을참현’(>고목근현) 같은 옛 땅이름에서 ‘달(達)’은 ‘높다’는 뜻으로 통한다.


‘다래’가 들어간 땅이름은 겉으로 보면 열매 다래에서 말미암은 듯해도, 실제로는 ‘산’이나 ‘땅’, ‘높은 곳’을 가리키던 옛말 ‘’에서 나온 것이 많다. ‘다래’, ‘다래골’, ‘다래들’, ‘다랫벌’은 산과 내, 들이 맞닿은 땅을 가리키는 말이 소리바뀜을 거쳐 굳은 이름들이다. 하늘에 뜬 달(月)과 소리가 어슷해 달 모양이나 달빛에 빗댄 풀이나 ‘다람쥐’, ‘다래’와 얽은 설명이 덧붙지만, 땅이름에 남은 ‘다래’는 자연을 말로써 정확히 짚어냈다고 하겠다.


‘다래’가 들어간 땅이름은 얼핏 보기엔 나무 열매 ‘다래’에서 말미암은 듯하지만, 실제로는 ‘산’이나 ‘땅’, ‘높은 곳’을 뜻하던 옛말 ‘’에서 생겨났다. 어쩌면 먼 옛날엔 산과 땅이란 말을 섞어 썼을 수도 있다. 배달말은 애초 닫힌소리에서 열린소리나 된소리로 바뀌어왔다. ’이 ‘돌/달’(돌/달/덜/들)이 되고 ‘’(땅)이 되기도 한다. 다래, 다래골, 다래들, 다랫벌은 산과 내, 들과 벌이 맞닿은 땅을 가리키던 말이 소리바뀜을 거쳐 굳은 이름들이다. 하늘에 뜬 달(月)과 소리가 어슷해 달 모양이나 달빛에 빗댄 풀이나 ‘다람쥐’, ‘다래’와 얽은 이야기들이 덧붙지만, 땅이름은 그 자체로 우리 말 뿌리를 찾아가는 지층이요 화석이라고 하겠다.

작가의 이전글산마루에 있는 못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