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루에 있는 못골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39)

by 이무완

연못이나 소(沼), 둠벙, 저수지가 있는 마을이라면 ‘못골’이라는 땅이름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물이 고이는 땅은 그 자리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더없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발고도 900미터가 넘는 산비탈에 앉은 마을이 ‘못골’이라면 어라, 하고 누구라도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정선읍 회동리의 ‘못골’이 바로 그런 땅이름이다.


물론 산꼭대기라고 해서 못이 없으란 법은 없다. 백두산 천지나 한라산 백록담처럼 화산 분화구에 물이 고여 생겨난 못도 있고, 해발고도 800미터인 정선군 남면 민둥산 자락에도 웅덩이 여덟이라고 해서 발구덕이라는 이름을 얻지 않았나. 그렇다 하더라도 정선읍 회동리 못골의 ‘못’을 곧이곧대로 연못으로 받아들이기엔 마뜩찮은 구석이 있다.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 245쪽)도 연못이 아닌 마을 앉음새로 땅이름을 풀이한다.


납덕골 위쪽 말랑에 있는 마을이다. ‘못’은 ‘산’의 옛말인 ‘’이 ‘몰’로 변하고, 다시 ‘못’으로 변한 것으로, ‘못골’은 ‘산 위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를 한자로 적을 때 ‘못’을 연못으로 보아 ‘池’를 쓰거나, 버섯으로 보아 ‘芝’를 쓰기도 한다.


‘못’을 물이 아닌 산으로 보았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다만 소리바꿈을 설명한 대목은 다소 거북하다. ≪정선읍 지명유래≫는 ‘못골’을 산(마루)을 가리키는 옛말 ‘’과 마을을 뜻하는 ‘골’을 붙여 생겨난 이름으로 보았다. 하지만 처음은 열린 소리인 ‘’이 아니라 그보다 앞선 닫힌 소리인 ‘’으로 볼 때 더 자연스럽다. ‘골’이 ‘몯골’로 되는데, 이 말을 ‘못골’로 엇들고는 연못 지(池) 자를 써서 ‘지동(池洞)’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실제 땅모양새가 ‘못’으로 데알게 한 면도 있다. 못골 마을은 전체가 커다란 돌리네 안에 자리 잡은 모양새고 마을 동쪽으로도 돌리네가 네 곳이나 있다. 이처럼 석회암 지대에서 빗물이 땅속 갈라진 틈으로 스며들며 우묵하게 파인 웅덩이, 곧 돌리네를 정선 지역말로는 ‘구덕’이라 했다. <조선지형도>를 보면 마을 동북쪽에 둥그렇게 점선으로 표시한 닫힌 곡선들이 바로 그 돌리네들이다. 대개 물이 고이지 않고 곧장 땅속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못’이나 ‘웅덩이’로 하기엔 부끄럽긴 해도 연못처럼 우묵한 곳에 있는 마을로 보았을 수도 있겠다.

못골.jpg 못골(지동)과 모다구 (지도출처: 조선지형도, 1917)

말밑을 ‘’으로 짐작케 하는 실마리로 ‘모다구’라는 땅이름이 있다. 못골 바로 남쪽에 있는 넙덕골에서 못골로 올라오는 길목을 ‘모다구’라고 했다. ‘모다구’는 ‘+아귀’로 풀이할 수 있다. ≪정선읍 지명유래≫에서는 이도 ‘+어귀’에서 말미암은 말로 설명하지만 그뒤가 소리바꿈이 어떻게 될까. ‘몰어귀→ 모러귀→ 모더귀’로 소리바꿈하는 까닭에 자연스럽지 않다. 산을 가리키는 본디 말이 ‘’이라고 보면 ‘→몰→몯’처럼 닫힌소리가 열린소리로 되었다가 다시 닫힌소리로 돌아온다는 건 번거롭다. ‘모다구’를 ‘몯+아귀’로 보면 뜻은 또렷해진다. 곧 산마루로 올라가는 어귀가 된다. ‘-어귀(아귀)’는 강어귀, 길어귀, 골목 어귀에서 보듯 드나드는 곳의 목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뒷가지는 밝은 소리 뒤에서는 ‘-아귀’, 어둔 소리 뒤에서는 ‘-어귀’로 쓰였다. 오늘날의 주먹(줌+어귀), 부엌(불+어귀), 손아귀(손+아귀), 기저귀(깆+어귀) 같은 말도 모두 같은 짜임에서 나왔다.


요컨대 정선 회동리 ‘못골’은 연못이 아니라 산을 뜻하는 옛말 ‘’에서 생겨난 땅이름이다. 높은 데 있는 마을로, ‘골→몯골→못골’로 이어지는 소리바꿈에서 뜻이 흐려지고, 돌리네가 많은 땅이란 특징이 보태지면서 ‘못’이 연못으로 슬그머니 둔갑한 셈이다.

발구덕.jpg 정선군 남면 증산리 민둥산 발구덕

배달말 한입 더

기저귀는 어린 아이가 입는 옷인 ‘깆’에 뒷가지 ‘-어귀’를 붙여 지은 말이다. ‘깆/깃’은 저고리나 웃옷 목에 들러 대어 앞으로 여미는 부분을 말하는 오늘날 ‘옷깃, 이불깃, 베개 깃, 소매 깃’ 같은 말에 흔적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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