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가 숨은 골? 고기 잡으며 숨어 산 골?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41)

by 이무완

우리 땅 곳곳에 ‘어은’이라는 땅이름이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명사전을 보면 어은동이 18곳, 어은골이 17곳, 어은곡이 1곳이다. 한자로는 물고기 어(魚)나 고기 잡을 어(漁) 자에 숨을 은(隱) 자를 쓴다. 대개 도랑이나 개울, 연못이 있는 마을에 붙은 이름으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살아가는 선비를 빗댄 말로 풀이하거나 풍수지리를 끌어들여 ‘잉어가 숨어 사는 땅’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물고기가 숨는 골을 가리킨 말인지, 고기 잡으며 숨어 산다는 뜻인지 또렷하지는 않다.


정선읍 회동리에도 ‘어은골’이 있다. <조선지형도>(1917)를 보면 ‘어은동’으로 썼다. 가리왕산과 중봉 사이에 자리한, 그야말로 깊숙한 골짜기 마을이다. 중왕산 아래에서 흘러온 개울에서 북쪽 상봉 쪽으로 600미터쯤 들어간 곳에 있다. 그런데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 250쪽)에 나온 설명은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가리왕산 상봉과 중봉에서 흐르는 물이 어우러지는 곳이라고 해서 ‘어운골’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어은골’로 변했다. ‘어은골’의 ‘어은’은 한자로 ‘漁隱’으로 쓰면서 ‘고기 잡으며 은거하였다’라든지 ‘물고기가 숨어 산다’는 식의 해석을 낳았다. ‘어우냇골’에서 온 어은골은 ‘물이 어우러지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어응골’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물이 어우러진다는 말은 억지스럽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게 마련이고, 골짜기라면 어디나 물줄기가 모여들어 어우러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조선지형도>에 나타난 물길은 ‘어우러진다’고 말하기에 낯 뜨거울 만큼 미미하다. 오히려 어은골은 느릿하고 길게 이어진, 깊숙한 골짜기 마을로 보아야 마을 앉음새를 더 잘 설명한다.

어은골.png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정선읍 회동리 '어은골' (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1917)

이쯤에서 한자 뜻에 매달리지 말고, 늘어진 땅을 나타내는 땅이름들을 찾아보는 편이 낫다. 이를테면 어전(於田), 어라전(於羅田), 어치(於峙), 어흘(於屹)에서 보듯, 길게 늘어진 땅이나 느긋하게 이어진 땅을 나타낼 때 ‘늘 어(於)’ 자를 흔히 썼다.


내 보기에는 본디 ‘느른골’이나 ‘느린골’이었고, 이를 한자로 적는 과정에서 어은동(於隱洞)으로 썼을 가능성이 높다. 이때 ‘은(隱)’ 자는 ‘숨는다, 감춘다, 가린다’는 뜻이 아니라 [ㄴ]이나 [은]이라는 소리를 나타내려고 쓴 선택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늘은, 느른, 느린’이란 배달말을 한자로 적으면서 뜻이 분명한 어(魚)나 어(漁) 자로 바꿔 쓰면서 ‘물고기가 숨는 곳, 물고기를 잡으며 숨어 산다’는 해석을 보탰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세속을 등지고 고즈넉한 시골에서 낚시하며 숨어 지내는 고고한 선비의 풍류가 겹쳐지면서 ‘어은(漁隱)’은 땅이름이나 정자 이름뿐만 아니라 자기 호로 삼는 사람도 많았다.


정선 ‘어은골’은 물줄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라기보다, 느릿하게 이어진 골짜기 마을이다. 아마도 ‘느른골, 느린골’ 같은 땅으로 보고 ‘어은(於隱)’이라고 한 데서 말미암은 땅이름이 먼저 있고, 뒷날 풍류스러운 뜻을 보태서 지금과 같은 해석을 낳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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