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43)
정선군 북평면에서 정선읍으로 가다보면 조양강(임계천) 남쪽으로 들판 가운데 봉긋하게 솟아난 산 하나가 보인다. 마치 제주도 ‘오름’을 떠올리게 한다. 이 산을 ‘오음봉’이라고 하는데, ≪정선 북평면 지명유래≫(북평면, 2007, 115쪽)엔 말밑을 이렇게 말한다.
남평리 마을 한가운데에 솟아 있는 해발 약 440m의 봉우리다. 산봉우리 모습이 훌쩍 내려 앉은 봉황(鳳凰)이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봉소포란형으로 봉우리 꼭대기에서는 장열리, 북평리, 나전리 등의 마을과 임계천, 오대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설에는 남평리 5개 마을에서 나는 소리가 들린다 하여 ‘오음봉’이라고 했다고 하지만 ‘주변과는 달리 돋아남’을 뜻하는 ‘옴’이나 ‘온전함’을 뜻하는 ‘온’과 ‘봉우리’가 합쳐져 ‘옴봉’이 되었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오음봉’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돋아남을 뜻하는 ‘옴’과 온전함을 뜻하는 ‘온’이 모여 ‘옴봉’이 되었고,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오음봉’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국토정보지리원 누리집 ‘지명사전’에서 ‘오음봉’을 찾으면 하나밖에 없다. 대신 ‘오음산’으로 찾으면 모두 세 곳인데, 두 곳이 강원도에 있다. 유래를 찾아보면,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에 있는 ‘오음산’엔 “이 산의 정상에 올라가면 주위에 있는 장현리, 왕곡리, 적동리, 서성리, 탑동리 등 6개 마을에서 들려오는 닭소리와 개짖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하여 오음산(五音山)이라 불렀다”고 하는 유래가 있다. 홍천군 영귀미면에 있는 오음산(930m)은 “1,000m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반경 20㎞ 이내에서는 가장 높으므로 동물들도 많을 것이다. 예전에는 깊은 산에서 이들 다섯 동물은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따라서 오음산에는 유난히 짐승들이 많아서 다양한 동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에 오음(五音)인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의 오성(五聲)’에서 음을 따서 ‘오음산(五音山)’이라 한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전남 신안군 장산면 오음리 오음산은 “오음 마을 북쪽에 있는 산”으로만 설명해 놓았다.
우리 조상들은 오행 사상에 기대어 산 모양새나 앉음새를 따져 저마다 다른 기운이 있어서 사람의 기운에 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그런 까닭인지 이들 산에 오르면 ‘다섯 가지 음률’이나 ‘다섯 가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봉우리라는 엇비슷한 유래가 전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먼저 산 앉음새를 보면 대개 산줄기가 길게 이어진 곳이 아니라 저혼자 우뚝하게 솟은 모양새다. 마치 제주도 오름을 꼭 빼닮았다. ≪탐라지≫에 “이곳 백성들 사투리가 어렵고 껄끄러워 말이 높게 시작하여 끝은 낮은데, 김정이 쓴 ≪풍토록≫에서는 토착민 말소리가 가늘고 높아 바늘로 찌르는 듯하고 또 알아먹기 어려운 말들이 많다고 했다”고 한다. 또, 뭍에서 쓰는 말과 다른 말로 ‘산’을 ‘올음(兀音)’이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지지자료≫(1911) 제주 지역 땅이름을 보면, ‘오름’을 한글로 ‘오라ᆞ감, 오롬, 으름’처럼 쓰고 한자로는 ‘五音(오음), 吾音(오음), 吾老音(오로음), 兀音(올음)’로 적었다. 하지만 오름을 독특한 제주말로 딱 잘라 말할 수 있다. ‘오름’은 ‘오르다’의 이름씨꼴로 볼 수 있고 높이 솟아 있는 땅을 나타내는 말로 쓸 법하다. 제주말처럼 ‘오름’이란 소리를 한자로 받아적는다면 ‘오음(五音), 오을음(五乙音), 오로음(吾老音), 올음(兀音)’처럼 쓰지 않을까. 실제로 ≪대동여지도≫(1861)에 ‘오음산, 오을족(吾乙足), 오을족령(吾乙足岺), 오로촌(吾老村), 오롱천(吾弄川), 올곶(兀串), 올미곶(兀未串) 같은 땅이름을 볼 수 있다.
한편, 배달말에 ‘움’이 있다. 풀이나 나무에 새로 돋아 나오는 싹을 말한다. 움은 껍질이나 땅을 밀고 나오면서 햇빛을 보지 못해 빛깔이 하얗고 꼴로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다. ≪정선 북평면 지명유래≫에서는 ‘옴’을 말밑으로 보았는데, 옴은 “아기를 낳은 여자의 젖꼭지 가장자리에 좁쌀 모양으로 오톨도톨하게 돋아 있는 것”을 말한다. ‘옴’이 소리바꿈하면 ‘움’이 될 수 있고, 주위보다 불룩하게 돋은 모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움’이란 말을 두고 ‘옴’을 말밑으로 보기엔 어색하다. 오히려 ‘움봉’이 ‘우음봉’을 거쳐 음양오행 사상이 담긴 ‘오음(五音)’ 같은 말로 바꿔 ‘오음봉’이 되었다고 보는 쪽이 한결 자연스럽다.
땅이름은 옛사람 마음이 스며 들고 오래도록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본래 뜻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오음봉은 주변과 달리 홀로 봉긋하게 솟은 산을 가리키던 말에서 말미암았다고 보아야 한다. 제주도 ‘오름’처럼 불룩하게 돋아난 땅을 뜻하는 말이 있었고, 이를 한자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오음(五音)’이라는 소리를 빌렸을 뿐이다. 그뒤 한자 뜻에 기대어 다섯 소리나 다섯 음률을 들을 수 있는 산이라는 해석은 뒷날 사람들이 의미를 덧씌운 것으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