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와 버들고개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44)

by 이무완
마상청앵_김홍도.jpg 김홍도, 종이에 수묵담채, 117.2×52㎝, 간송미술관

옛 그림에서 흔하게 보는 나무가 소나무고 버드나무다. 물가엔 꼭 버드나무가 나타난다. 김홍도가 그린 <마상청앵>에도 버드나무가 나온다. 봄날 버드나무 아래로 말을 탄 선비와 말고삐를 쥔 아이과 함께 길을 간다. 버드나무 가지에서 들려오는 꾀꼬리 소리에 몸을 돌리고 눈길 끝에 꾀꼬리 한 쌍이 다정하다. 버드나무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아마도 하얗게 비워둔 여백은 봄햇살이 환하게 비추고 뻐꾸기 소리와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어우러짐을 나타냈으리라. 이처럼 우리에게 버드나무는 매우 친숙한 나무다.


그렇다면 버드나무는 왜 버드나무인가. 버드나무를 가리키는 옛 이름은 ‘버드나모’다. 여기서 ‘버드’는 오므리거나 구부렸던 것을 죽죽 편다는 ‘벋다, 뻗다’에서 온 말로 본다. 따라서 버드나무는 가지나 줄기를 쭉쭉 벋는 나무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하면 땅이름인 ‘버들고개, 버들치, 버드내, 버들앗’은 어떤 까닭으로 ‘버들’이나 ‘버드’란 말을 얻었을까.

버드나무의 ‘버드’처럼 ‘벋은’이 말밑이다. 내가 길다랗게 벋었다 하여 ‘버드내’요 고개가 기다랗게 벋었다 하여 ‘버들고개’, ‘버들치’요, 밭이 길게 벋었다 하여 ‘버들앗’이 되었다. 정선 땅에서 같은 땅이름들이 있는데 하나씩 톺아보자.


정선읍 덕우리에 버들앗이란 마을이 있다. 덕우리 본마을로 백우담 일대를 싸잡아 가리키는 땅이름이다.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 194쪽)엔 “마을 앞쪽의 밭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어 ‘버들앗’, 또는 ‘버들앗치’라고 했는데, 이를 다시 한자로 쓰는 과정에서 ‘버드’를 ‘버드나무 유(柳)’ 자로 취해 ‘유촌(柳村)’이라고 했다.”고 말한다. ‘앗’은 본디 밭을 가리키는 말 ‘봗’인데, 앞소리인 ‘ㅂ’이 희미해지다 떨어져 나가면서 ‘앋, 앗’으로 소리가 바뀐다.


버들앗을 버드내, 버드내기라고도 했다. 마을 앞을 지나는 내를 가리키는 말로 썼는데, 이 말이 마을 이름으로도 썼기 때문이다. 내를 따라 길게 벋은 밭이 있는 ‘버들앗’이 먼저인지 냇줄기가 길게 벋은 곳이라서 해서 ‘버드내’라 했는지는 흐리터분하다. 다만 “‘버들앗’이 하천을 중심으로 변해 ‘버드내’가 되었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유천(柳川)’이 되었다.”(정선읍 지명유래, 194쪽)는 해석이 있다.


버들고개는 임계면 송계리에서 강릉시 왕산면 고단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버드내와 마찬가지로 “고개에 이르는 길이 길게 뻗은 곳이라고 해서 ‘벋을고개’라고 했는데, 이 말이 변해 ‘버들고개’가 되었다.”(≪정선 임계면 지명유래≫, 임계면, 2011, 171쪽) ≪조선지지자료≫(1911)에는 한자로는 ‘柳峙’로 쓰고 한글로는 ‘버들고가ᆡ’라고 했다.

버들 지명.png 앞에서부터 버들앗, 버들고개, 버드내, 버들치(지도 출처: 조선지형도, 1917)

한편 정선읍 광하리 군언 서쪽 산에 ‘버들치’가 있다. 군언과 웃드루를 오가던 고개인데, “엎피산에서 조양강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에 있는 고개라고 해서 ‘버들치’라고 한다.”(정선읍 지명유래, 301쪽)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물가에서 잘 자란다. 그런데 물가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는 땅이름에 ‘버드’나 ‘버들’이 보이기도 한다. 말소리가 어슷한 까닭에 버드나무를 떠올리고 버드나무에서 옮아간 땅이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버드나무의 말밑처럼 길이나 고개, 밭 따위기 길게 ‘벋은’ 모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요컨대 땅이름에서 ‘버들’은 나무가 아니라, 길게 펼쳐진 땅으로 해석할 때 그 땅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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