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의 품격, 칼의 망설임

일본에서 느낀 집단 규범의 두 얼굴

by 윤수호

세 차례 일본을 찾으며, 나는 ‘국화와 칼’이라는 상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2019년 삿포로를 시작으로, 2024년 오사카, 2025년 다시 찾은 삿포로까지. 매번 같은 장소를 아들과 함께 걷고, 같은 음식점을 다시 찾으며 변하지 않는 질서와 정중함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변하지 않음’이 주는 거리감도 분명했다. 식당의 메뉴, 상점의 인사, 거리의 분위기까지. 몇 년이 지나도 똑같다는 사실은, 전통을 지키는 미덕이자 동시에 변화에 대한 망설임처럼 느껴졌다.


『국화와 칼』에서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을 ‘수치(shame)의 문화’라 명명했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체면과 규범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회. 내가 마주한 일본의 친절도 그런 맥락에서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과연 그 정중함은 마음에서 우러난 것일까, 아니면 ‘문제 만들지 않기 위한 집단 규범의 압력’일까?


“모두가 하니까 나도 한다”는 분위기, 매뉴얼화된 듯한 서비스 태도, 의견을 내지 않고 분위기를 따르는 무언의 합의. 그 모습은 단순한 예절을 넘어, 사회가 개인을 억제하는 방식처럼도 느껴졌다.


한국이 종종 ‘과도하게 빠르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일본은 ‘너무 천천히 바뀐다’는 인상을 준다. 기술과 인프라는 진화했지만, 문화적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과거 버전에 머물러 있다. 그 속도 차이가 불러오는 감정은, 아마도 ‘정체된 아름다움’에 대한 복잡한 감탄일 것이다.


나는 세 번의 여행을 통해, 일본이라는 사회가 여전히 국화의 격식을 지키고 있지만, 칼을 들고 나서기엔 주저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웠다. 친절하지만 낯선, 정중하지만 억제된. 그 이중적인 얼굴이 오늘날 일본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언어일지도 모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