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미국 전쟁 보도를 보며, 정해진 프레임 안과 밖에서 생각한 것들
얼마 전 대학원 소논문 발표를 준비하면서 테헤란 타임즈(Tehran Times)의 1면에 내 시선이 멈췄다.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이 빼곡히 배열돼 있었고, 그 위에 굵은 헤드라인이 올라가 있었다. 그 이미지는 단순히 비극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보는 사람의 시선을 한 방향으로 몰아갔다. 무엇을 먼저 보게 할 것인지, 누구의 얼굴을 기억하게 할 것인지, 어떤 감정으로 사건에 들어가게 할 것인지가 이미 설계되어 있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그 장면은 발표를 준비하는 내내 계속 상기됐고, 꽤 오래 여운이 남았다. 발표 전 아이스브레이킹처럼 이 이야기를 꺼냈는데, 사진기자들과 교수님이 아주 좋게 봐주셨다. 아마도 그 반응은 단순히 ‘전쟁’이라는 주제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뉴스를 본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사실은 누군가가 고른 얼굴과 배치된 시선을 먼저 만나고 있다는 점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전쟁 보도의 대부분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소비된다. SNS와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같은 사건도 서로 다른 문장과 영상, 해시태그를 달고 끝없이 재가공된다. 하나의 장면은 잘리고 붙여지며 전혀 다른 분위기로 유통된다. 디지털 환경은 강력하지만, 그만큼 프레임도 고정되지 않는다. 정보는 빠르게 퍼지지만, 시선은 쉽게 흔들린다.
반면 전통적인 신문 1면은 다르다. 지면은 한정돼 있고, 그 안에서 편집은 더 단호해진다. 무엇을 크게 놓을지, 어떤 얼굴을 선택할지, 어떤 문장을 제목으로 세울지에 따라 독자의 감정선은 빠르게 형성된다. 온라인에서는 프레임이 흩어질 수 있지만, 신문은 오히려 정해진 틀 안에서 더 강한 방향성을 만든다. 그래서 한 장의 1면은 때로 수많은 온라인 게시물보다 더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최근 이란과 미국의 충돌 국면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우리가 접하는 것은 전쟁 그 자체라기보다, 전쟁이 배치된 방식이다. 어떤 언론은 전략시설과 군사행동을 먼저 보여주고, 어떤 언론은 민간인의 얼굴과 피해 장면을 전면에 세운다. 어떤 기사는 안보를 말하고, 어떤 기사는 책임을 묻는다. 같은 사건인데도 먼저 보게 되는 장면에 따라 전혀 다른 전쟁처럼 느껴진다.
결국 사실은 선택과 배열을 거쳐 우리 앞에 온다. 무엇을 보여줄지 못지않게, 무엇을 지울지도 중요하다. 특히 디지털 시대일수록 오히려 전통적 편집의 힘은 더 또렷해 보인다. 모두가 스크롤하는 시대에 한 장의 1면은 사람을 멈춰 세운다. 정지된 화면은 오래 남고, 그 안에 놓인 얼굴들은 하나의 정보가 아니라 “이 전쟁을 이렇게 보라”는 강한 메시지가 된다.
그래서 이제 나는 전쟁 보도를 볼 때 기사 내용만 읽지 않으려 한다. 왜 이 사진이 선택됐는지, 왜 이 문장이 제목이 됐는지, 왜 어떤 장면은 앞에 놓이고 다른 장면은 밀려났는지를 함께 보려 한다. 전쟁은 늘 참혹하지만, 그 참혹함조차도 누군가의 편집을 통해 도착한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전쟁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골라 놓은 전쟁의 얼굴을 보고 있는가. 이 질문은 중동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북한을 다루는 기사에서도, 국제정치를 둘러싼 거의 모든 이미지에서도 반복된다. 정해진 프레임 안에는 의도가 있고, 프레임 밖에는 지워진 것들이 남는다. 뉴스를 읽는다는 것은 사실을 아는 일이면서도, 동시에 누가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멈춰 세우는지 알아차리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