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원래 이렇게 해왔어”를 넘어서

by 윤수호

새 조직에 들어가면 나는 늘 다짐한다. 먼저 배우고, 필요하면 고치자.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같은 말이 돌아온다. “우린 원래 이렇게 해왔어.” 이 한 문장은 규정도 아니고 법도 아니지만, 이상하리만큼 강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익숙한 방식은 안전해 보이고, 새로운 시도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조직이 쉽게 안 바뀌는 데는 사연이 있다. 작은 조직도 오랜 습관과 분위기가 쌓여 있다. 보고서 쓰는 방식, 회의하는 순서, 말 꺼내는 톤까지 정해져 있다. 이런 것들은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모두가 그 안에서 움직이면 편하다. 리더 입장에서는 변화를 승인하는 순간 책임이 생긴다. 그러면 자연히 조심스러워진다. 주변 사람들도 자신이 가진 작은 이익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새로운 제안은 “나중에”로 미뤄지고, 도전적인 사람은 조용히 지친다.

그렇다고 정면 돌파만이 답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표면적으로는 순응해도, 속으로는 변화를 준비하자. 즉, 당장 부딪혀 얻을 게 없을 때는 잠시 접고 신뢰부터 쌓는다. 대신 정말 중요한 가치—공정, 안전, 약속—에서는 물러서지 않는다. 다만 방식을 바꾼다. 타이밍을 고르고, 말을 부드럽게 하고, 미리 동료와 상의한다. 회의장에서 처음 꺼내면 반대가 크다. 회의 전에 1:1로 방향을 맞추면 훨씬 수월하다.

나는 “실험”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제도를 고치자고 하기보다, 2주짜리 시험 운영을 제안한다. 실패하면 원래대로 돌린다고 먼저 말한다. 그리고 결과를 기록한다. 감정으로 싸우지 말고, 데이터로 이야기한다. 회의 마지막에 ‘이번에 결정한 것’과 ‘이번에 배운 것’을 한 줄씩 적는다. 처음엔 형식 같아도, 몇 번 반복하면 팀의 말투가 달라진다. “왜 이렇게 해?”에서 “이번에 뭐 배웠지?”로 바뀐다. 의례가 달라지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문화가 움직인다.

리더에게 필요한 건 속도를 조절하는 힘이 아니라 안전망을 만드는 일이다. 어디까지 시도하고, 실패하면 어떻게 회수할지 미리 정하면 사람들은 용기를 낸다. 구성원에게 필요한 건 영웅이 되는 게 아니다. 작은 성공을 남기고, 다음 사람이 따라 하기 쉽게 길을 표시하는 것이다. 기록하고 공유하는 사람이 결국 문화를 한 칸 움직인다.

결국 문화는 몇 명의 연설로 바뀌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매일 조금씩 같은 선택을 할 때 움직인다. 아래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쌓이면, 리더는 늦게나마 그것을 제도화한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바꿔 본다. “이건 내 불편인가, 우리의 문제인가?” 만약 ‘우리’라면, 오늘 전부를 고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작은 실험을 시작한다. 두 주 뒤,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된다. “생각보다 괜찮네요.” 그 한마디가 다음 변화를 부른다.

순응이 늘 나쁜 건 아니다. 가끔은 불필요한 소모를 줄여 준다. 하지만 영원한 순응은 조직을 늙게 만든다. 내가 택할 길은 단순하다. 중요한 가치에는 단단하게, 방법과 절차에는 유연하게. 큰 한 방보다 작은 성공을 여러 번.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날 그 말이 바뀐다. “우린 원래 이렇게 해왔어”에서 “우린 이렇게 바꿔 왔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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