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반항
글을 쓰기 전에 현재 저와 어머니의 사이는 아주 좋음을 먼저 말씀드려요:)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았을까. 한참 인기가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했다.
"진짜 저렇게까지 할까?"
이런 질문을 들으면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요...'
그 드라마를 보면서 격한 공감을 했던 난 드라마의 내용이 충분히 있고도 남을 만한 일이란 걸 알고 있었다. 어떻게? 나도 그렇게 성장해왔으니까.
드라마를 보면 졸지 말고, 공부에 집중하라고 침대를 빼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서 떠오른 추억 하나. 학구열이 남달랐던 우리 어머닌 내가 잠이 들까 봐 내 침대에서 주무시곤 했다. 그러니 내가 깊은 공감을 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엔 초등학교 때에도 중간, 기말시험이 있었다.
시험 때만 되면 어머닌 상을 펴고, 날 앞에 앉힌 채 교과서와 문제집을 펼치셨다. 그리고 시험범위 내에서 질문을 하셨다. 난 답을 해야 했다. 범위 내에서 모든 질문에 정답을 얘기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그렇게 하고 나서 1학년 첫시험에 만점을 받았다. 어머니는 너무 좋아하셨다. 그 뒤부터 시험 기간에는 늘 상 앞에 붙잡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만점의 행복은 그때 딱 1번뿐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공부에 대해 전혀 포기하시지 않았다.
중학교 올라갈 때였다. 반을 구성하기 위한 테스트가 있었다. 혼자서 공부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항상 어머니와 함께 질의응답식으로 공부하다 보니 혼자서 공부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리고 솔직히 공부가 하기 싫었다. 그러니 결과가 참혹할 수밖에.
어머닌 많이 실망하셨다. 잠깐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어머니의 교육열은 다시 바짝 고개를 들었다.
전 과목 학원, 특히 약했던 수학과 영어는 과외까지...
어머니는 무리를 해서라도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공부가 정말 싫었지만 소심하고 내성적인 난 그 말을 못 했다. 왜? 내가 아는 친구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으니까. 그렇게 뺑뺑이 돌며 공부를 해도 어머니가 바라는 등수는 나오지 않았다. 적당한 상위권, 그것이 나였다. 늘 그것이 무거운 짐 덩어리였다.
정말로 벗어나고픈 강남 8학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