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랑비 Nov 11. 2023

애증의 수학 (feat. 소심한 반항의 시작점)

K장녀의 반항

'수학시험을 안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없겠지..?'


극도로 문과 쪽으로 치우친 머리를 갖고 있던 나에게 '수학'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했지만 도통 성적은 오를 생각을 안 했다. 수학시험 날짜가 다가오면 속부터 갑갑해졌다. 시험 당일 날 시험지를 받으면 눈앞이 깜깜해졌다. 1번 문제를 간신히 풀었다 해도 언제 모르는 문제가 나올지 모른다는 공포는 두렵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진짜 모르는 문제가 나와버리면 눈물부터 나왔다. 그다음부터는 아는 문제도 모르는 거 같았다.


시험을 다 보고 나서 친구들은 끼리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답안지를 비교했다. 그때 난, '집에 어떻게 가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답안지 비교해 보기도 창피했고, 시험은 망했고, 어머니의 반응은 뻔했다. 집에 가는 거조차 두려웠다. 가긴 가야 하는데 말이다.

어떻게든 천천히 가고 싶었다.


얘들아, 우리 던킨도너츠 들렀다 가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집에 늦게 가는 방법이었다. 같이 집에 가는 친구들과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던킨도너츠나 베스킨라빈스에 들려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도너츠 하나, 아이스크림 한 스푼 먹는데 '세월아, 네월아~'하면서 먹는 것이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럼에도 다 먹는 순간은 다가왔고, 결국 집에는 가야 했다.


눌러? 말아? 눌러? 말아?


집 앞이다. 초인종 앞에서 손가락이 왔다 갔다 한다. '아... 어머니가 집에 없었으면 좋겠다...' 백만 번을 이런 생각을 해보지만 알고 있다. 어머닌 내 시험 결과만 목을 빼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이럴 거면 공부하지 마!!!


역시나... 예상했던 반응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공부가 그렇게 싫었으면서 공부하지 말라는 말은 왜 그리 무서웠을까. 어머니가 나를 전부 포기하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난 존재의 이유가 없는 걸까? 늘 궁금했다. 하지만 돌아올 대답이 무서워서 물어볼 수 없었다.






오!!!!!!!!!
하나밖에 안 틀렸어!!!!!!!!!


내 수학시험 인생에 유일하게 딱 1개만 틀린 날이었다. 던킨도너츠도, 베스킨라빈스도 들릴 필요가 없었다. 날아가듯 집으로 갔다. 초인종 앞에서 망설이지도 않았다. 당연히 어머니의 칭찬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이거 아는 문제야? 모르는 문제야?"

"아는 거..."

"계산에서 틀린 거네. 엄마가 계산할 때 잘 보라고, 조심하라고 했지! 이것만 맞았음 만점인 거잖아!"


칭찬 따위 없었다. 나한테는 한 개 '밖에'였지만, 어머니한테는 한 개 '씩이나'였던 것이다. 그때 알았다. 어떻게 해도 공부로는 어머니를 만족시켜드릴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의 반항 아닌 반항, 소심한 반항이 시작된 것이.




작가의 이전글 스카이캐슬 저리가라였던 어머니의 교육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