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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Jul 12. 2024

멕이는 사람들(1)

개자석


오늘은 불금입니다. 총무는 금욜 저녁이 참 좋습니다. 금욜밤엔 기분이 너무나 좋아져서 퇴근하자마자 마트로 달려갑니다.  아주 신이 났습니다. 잔칫상을 준비합니다. 월욜에서 금욜까지 쎄빠지게 고생한 자신에게 먹을 것으로 보상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특히 금욜은 라면 먹는 날, 노란 양은 냄비에 미리 신 김치를 넣고 물을 끓입니다. 신라면 한 개 반을 넣고 끓이기 시작합니다. 두부, 햄, 떡국용 떡도 넣어줍니다.


작은 개다리소반에 한 상 차려놓으니 뷔페가 부럽지 않습니다. 미리 몸도 씻고 파자마 바람으로 편하게 앉았습니다. 씻기 전에 음식을 먹으면 일어나기 싫어서 게을러집니다. 씻고 먹어야 느긋하게 만찬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죠. 와우~ 부대찌개 같은 김치라면 냄새가 방안에 가득합니다. 양은 냄비 뚜껑에 라면이랑 햄이랑 두부, 떡살까지 건져 놓습니다. 그래야 빨리 식기 때문이죠. 뚜껑에도 뷔페가 차려졌네요. 후~~ 입김을 불어 라면을 식힙니다. 크게 젓가락으로 말아서 한 입 먹으려는 찰나 핸폰이 울립니다. 무시하고 입을 벌리려다 냄비뚜껑을 내려놓고서 통화를 합니다. 라면도 식힐 겸 해서요. 빨리 일분 안으로 끝낼 작정입니다.


 

노빠꾸

전화를 받자마자 풀이 죽은 노빠꾸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고락을 함께 한 동료에게 뭔가 생겼음을 직감한 총무는 긴장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갑니다.

 

"어이~큰일이네, 큰일! 이걸 어쩌면 좋디야? 마~~ 괜히 일을 벌려서는 골치 아픈 일이 생겨부렀네.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고, 내가 왜 겁도 없이 일을 저질렀을까잉~~ 잠이 안 오네 잠이. 후유~~"

 무슨 일 있나요? 뭔 걱정을 이 꺼지게 하시나요?


''아니, 그게 말이시 내가 너무 큰 일을 내버렸당께. 집식구한테 말했다가 쫒겨날뻔혔어. 이 일을 어쩌면 좋디야? 뉴스까지 크게 나고 인터넷으로 도배되었는데, 총무는 모르는감?"

 아니 그니까 뭔 일로 그러세요? 말을 해야 알아들을 거 아니에요? 뭔 사고라도 났어요?


"아니~총무는 얼마 전 뉴스 안 받는가? 우리 지역에서 아파트 청약이 강남을 초월했디야? 못 들었는감?"

 ?? 당최 뭔 소린 줄 모르겠네요. 자세히 좀 알려줘 봐요?


"아니~그니께 내가 얼마 전 혹시나 해서 신도시 아파트청약을 했단말이시. 허~참나, 그게~~ 조상님이 살피셨는디, 옴마~그냥 딱 당첨되고 말아부렀네. 이 일을 어쩌면 좋아 그려?"

ㅡ 그게 뭐 걱정할 일이라고 불금에 전화를 걸고 그러세요? 전화 끊어요. 라면 불어요."


"아니~어이, 총무님! 시방 라면이 문젠겨? 그게 청약경쟁률이 얼만 줄 아는가? 200대 1이여. 200대 1. 내 주위에 있는 경찰서장이랑 군수, 이장들 다 떨어졌다고 울상인디, 나는 덜컥 되야부렀네. 어쩌면 좋아? 그것도 RR층으로다...억수로다 운이 좋았는가벼. 다른 사람은 일층이라도 붙게 해달라고 빌었다는디 난 왜 이러는겨? 높은디는 못사는디, 큰일이네."

 그니까 당첨 됐으면 좋을 일인데 왜 걱정을 하느냐고요?


"아니~낼 모래 계약금을 10% 걸어야 하는디 돈이 없응게 그라지. 5억 8천 짜리니께 5천8백만 원을 챙겨야 쓰는디 이 일을 어쩌면 좋디야? 마누라가 노발대발이여. 돈도 없이 일 저질렀다고 말이여."

ㅡ 감당 안되면 계약 안 하면 되잖아요?


"아니~시방 총무가 날 놀리는겨! 벌써부터 부동산 전화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당께! 시도 때도 없이 큰 거 한 장 줄 테니 넘기라고혀서 지금 내 전화가 마비될 지경이여! 나보고 계약하지 말라니. 섭섭하네 증말. 근디 부동산에서는 내가 당첨된 것 어찌 알았을까? 하여간 우리나라는 보안이 안 돼서 큰일이여."

ㅡ허걱!! 당첨되자마자 한 장요? 그럼 얼른 넘겨야죠! "


"아니~이 사람아~ 시방 무슨 소리를 하는겨? 계약금 10%내고, 중도금은 집단대출 받으니께 걱정할 필요가 없어. 2년 반 만 있으면 입주인데 그때는 큰 거 5장은 따논 당상이여. 최소로 못잡아도 4장은 되는디 미쳤다고 한 장에 넘기는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팔 거고만."

ㅡ?? 그럼 엄청 좋은 일인데 왜 걱정을 하시냐고요?


"아니~지금 당장 계약금 5천8백을 챙겨야 하는디, 돈이 없응께 그라지. 하필 되더라도 저층이면 괜찮은디 RR층이 되아부러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랑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도 나면 내려오지도 못하고 얼마나 고생허겄어. 생각만 해도 아찔하구먼. 왜 하필, 최고로 좋다는 최상층, 그것도 탑층이 되야부렀을까잉? 중간 층이나 되얐으면 속이라도 편할 판인디."

 그렇게 걱정스러우면 그냥 임자 있을 때 넘기시고 저층으로 사셔야지요?


"아니~~이 사람아, 지금 사람들은 날보고 천복을 타고났디야. 200:1로 당첨된 것도 어마어마헌디 거기다가 RR층까지 당첨된 것은 로또래야. 로또! 총무는 뭘 알고 좀 씨부리지. 그 좋은 로또 명당을 왜 파는가? 총무 같으면 팔겠는가?"

ㅡ그럼 집안에 경사가 났는데, 왜 마누라한테 쫓겨나요?


"아니~ 그게 아니고 처음엔 일 저질렀다고 난리를 치더니 방송국에서도 때리고 신문에 도배를 허니께 어제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닭볶음탕이랑 계란찜이 식탁에 올라오더라니께. 계약금은 마누라 앞으로 대출받는것으로혔어. 기분이 풀렸는가벼."

 부인 앞으로 계약금 대출이 다 되었는데, 또 뭔 걱정을 하고 그러세요?


"아니~~ 대출이자가 얼마나 비싼디. 대출금 못 갚으면 큰일이잖혀. 당첨된 RR아파트, 등기 날 때 까정은 내꺼가 아닌거시여. 내가 걱정을 하니께 대기업 부장인 내 아들이 걱정 말라고, 자기가 대신 내주겠다고는 허더라고. 우리 애들은 참 효자여~ 효자. 어른이 되야가지고 대기업 아들한테 손 벌리면 안 되지. 이번에 아들놈도 차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했디야. 승용차도 BMW로 바꿨다고 사진 보내왔어. 외제차라 그런가 삐까뻔쩍혀. 총무는 BMW 가 뭔 줄 모르지? 이따 사진 보내줄게. 이거 발통 하나만 팔아도 계약금은 충분허다고 은 하더구만. 부장 아들놈이 돈 없으면 발통하나 빼준다고는 혔어. 다 잘 풀려 부렸당께."

 ... 그래서 왜 저한테 전화하셨어요?


" 아니~난 또, 우리 총무님도 혹시 당첨되얐나 싶어서 전화했지. 우리 회원님들 30명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보니께 우리 모임에서는 나만 되얐는갑서. 내가 당첨되었다고 허니께 다들 부러워서 미쳐 불라고 허더만. 당분간 계약금이랑 대출이자 내야해서 모임비 삼만 원도 못 내게 생겼네. 한 푼이라도 애껴서 RR층으로 이사 가야지, 안 그려? 그리고 체육대회 때 내가 음료수 50개 후원하기로 한 것도 취소혀야 겄어. 한 푼이라도 아껴야 쓴 게 이해 좀 허드라고. 대출금 때문에 잠이 안 오는구먼. 잠이 안 와서 전화 한번 걸어봤어. 총무는 아직도 그 아파트 사는가?"

ㅡ예. 아직.."


"아니~지나면서 보니께 아파트 외벽도 거무칙칙하고 오래되였더만. 용케 잘 살고 있네. 그리여~ 옛날 아파트가 보기는 흉해도 시멘트 공구리를 야물딱스럽게 비벼서 아주 잘 지었디야. 웬만한 지진에도 안 무너지게 잘 지었다고는 허더만. 귀신 나오게 생겨서리 난 공짜로 살라해도 못살겠더구먼 총무는 참 씩씩허네. 그리여~ 앞으로도 씩씩허게 살어. 아파트가 오래돼서 관리비랑 세금도 쌀 거 아녀? 그리여~~이때 돈 버는겨. 비싼 신축 아파트 살 필요 없어. 돈 구덩이여~돈구덩. 최신축 아파트관리비가 아매 총무아파트 월세 열 배는 넘는다는디, 나도 큰일이네. 돈 많이 버소. 그만 끊어야겠네. 아까 라면 끓였다면서? 맛나것네, 불기 전에 잘 잡수소. 잉~이만 들어가소."

ㅡ??......!!!"


 그녀의 개다리 소반에는 이미 라면이랑 떡살, 두부, 소시지가 퉁퉁 불어 터져서 솜사탕 마냥 부풀어 올랐네요. 한 젓가락도 뜨지 않았는데 양은 냄비가 이미 배가 불러버렸네요. 냄비 뚜껑에 올려놓았던 뷔페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한테 처 맞았는지, 퉁퉁 불어있습니다. 불서 터진 라면을 보니 입맛이 깡그리 사라집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맛있어 보이는 잔칫상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개밥도 안될 것 같습니다. 총무는 시아시 된 캔맥주를 따서 단숨에 삼켜버립니다. 맥주마저 미적지근 심심 맹맹합니다. 불금을 아주 잡쳐버리고 말았네요.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노빠꾸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개자석, 나를 만만히 보고 엿을 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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